올해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는 세계에서 9번째로 1조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그 동안 세계 11~13위에 머물던 우리나라의 수출은 200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시장 다변화와 품질 향상 등에 힘입어 2010년 이후 세계 7위 규모로 도약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무역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금융의 역할이 컸다. 경제개발 초기에 외국의 무역상들이 아시아 변방에 위치한 한국이라는 가난한 나라의 기업을 믿고 무역거래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업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 뒤에서 무역거래를 보증해주면서 든든한 힘이 되어준 우리나라 은행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더 나아가 금리자유화와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달러자금을 손쉽게 이용하기 어려웠는데, 이 때에도 기업들에게 해외에서 차입한 달러자금을 이용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무역을 진흥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우리나라 은행들이었다.
하지만 경제 여건과 무역거래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우리나라 무역의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부채 비율이 대폭 감소하고 자유변동환율제가 도입되면서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해외의 외화자금을 조달해서 기업들에게 공급하는 단순한 자금중개자로서의 은행의 역할은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반면 환율변동 위험이 확대됨에 따라 수출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환율변동으로 기업 경영의 안정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막기 위한 환위험 관리의 수요가 커졌다. 따라서 앞으로 기업이 환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어 금융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무역결제 방식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1990년에는 수입업자의 거래은행이 대금 지급을 보증하는 신용장 방식의 거래가 우리나라 수출의 69%에 달했지만 2010년에는 그 비중이 16%로 대폭 축소됐다. 반면 은행의 보증이 없는 송금방식 수출은 1990년 6%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59%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결제방식의 변화로 인해 수출업체는 무역거래에서 이전보다 훨씬 큰 신용위험을 안게 됐다. 최근 우리나라의 수출이 다변화하면서 수입업자의 신용위험이 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의 비중이 72%에 달하고 있어 이 문제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해외금융기관과의 정보공유 등을 통해 해외 수입업자의 신용조사 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무역에 필요한 유동성 공급은 물론 수입업자의 신용위험까지 인수하는 팩토링, 포페이팅 등의 금융서비스도 확대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무역은 본ㆍ지사간 거래나 해외에서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 등과 연계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설비ㆍ운영자금 지원, 우리나라 기업과 거래하는 현지기업에 대한 구매자금 공급 수요 등이 커지고 있다. 이 점에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현지 진출의 필요성도 커졌다.
이처럼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무역 1조달러 시대로의 진입 이후 새로운 도전 과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국제무역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환위험과 신용위험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함께 다양한 금융서비스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새로운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김태준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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