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오면 구석만 찾아서 책을 보는 아이들이 있다. 학년을 불문하고 아이들은 구석을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 도서관에서 저학년들은 관장과 눈을 맞춰야 한다. 들어올 때 눈을 못 맞추면 나갈 때라도. 그러면 아이들은 웃기도 하고 새로 입은 옷 자랑에, 친구 이야기도 한다.
고학년들은 대개 아무 말 없이 왔다가 가는 줄도 모르게 가는데 <소리 괴물> (위정현 글ㆍ이범재 그림ㆍ계수나무 발행ㆍ사진)을 본 아이들은 저마다 할 말이 있는 얼굴로 다가온다. '밥 먹고 등교해라', '앞을 잘 보고 다니렴', '미안해' 등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은 말들이 서로 뭉쳐 커다란 소리괴물이 되고 도시를 어지럽힌다는 내용의 그림책. 읽고 난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수많은 말들이 쏟아낼 듯 입술을 달싹인다. 소리>
"근데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남의 말을 들어야 될 것 같은데 왜 이리 선생님에게 말이 하고 싶어지죠?"
"그 동안 내가 안 들었던 말들이 귓가에서 왕왕거리는 것 같아서 머리를 털어야만 될 것 같아요."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만약에 내가 듣지 않았던 말들이 공기 중에 떠돌다가 내 주위로 몰려올 것 같아요. 털어도 털어내도 털어지지 않고, 내?아도 다시 달라 붙을 것 같아요."
나 역시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무릎을 '탁'하고 쳤다. 상대방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딴청토론'의 패널의 모습, 고함지르기와 삿대질이 말을 대신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아이들의 눈높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일깨워준다. 아무리 서로가'말하기'를 잘해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그 말들은 모두 소용이 없다는 점을. 서로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불편한 일인지. 말을 하는 입은 소리도 내고 음식도 먹고 다양한 노릇을 하지만, 귀는 오롯이 듣기를 할 때만이 존재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귀하디 귀하다는 점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지만 남녀노소 읽어볼 법하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만 하려 드는 어른들이 더 읽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고학년 아이들도 글이 적어서 더 큰 울림이 있다며 친구의 말을 안 들어줬던 적은 없나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때 그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반성하게 된다면서. 지금도 남극까지 쫓겨난 소리 괴물은 여전히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다.
▦ 들꽃이야기 도서관은 부산의 대연동 못골시장 나들목에 있다. 1층 벽에 걸린 도서관 나무현판을 보지 못하면 빼곡하게 들어선 학원과 가게들 사이에서 지나쳐버릴 수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도서관에는 아이들 눈높이를 넘지 않는 연두색 서가에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책들이 놓여있다. 그림책,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을 위한 책, 책을 기본으로 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지역공동체와 함께 하는 책 읽어주는 선생님 등 조금은 소란스러우면서도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곳이다.
김숙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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