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 3학년 김모(23ㆍ여)씨는 최근 체크카드를 만들려고 은행에 갔는데, 창구직원은 대뜸 신용카드를 권했다. "소득이 없어 자격이 안될 텐데"라고 하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집요한 질문에 "이모 화장품가게 일을 가끔 봐주고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자 은행원은 "그냥 가게 직원 자격으로 발급하면 된다"고 꼬드겼다. 월급을 받는 일이 아닌데도 '월수 얼마'라고 알아서 적어주기까지 했다. 김씨는 서류확인 없이 구두로만 처리되는 과정에 놀랐고, 사용한도를 본인이 맘대로 정할 수 있다는 말에 또 한번 놀랐다. 김씨는 "친절한 설명에 홀린 듯 최대 한도를 설정해 발급을 받았는데, 이후 씀씀이가 많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모(27)씨는 최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두 달 전 계좌를 만든 시중은행 계열 카드사였다. 거래를 한 적이 없는데도 이씨의 정보를 꿰고 있었다. 취업준비를 하느라 돈을 벌지 못했지만, 전화상담원은 발급 자격이 된다고 누차 강조했다. 기본정보는 관심도 없는 듯 결제일만 추가로 물어보고 카드를 보내왔다.
한국외대 4학년 남모(23)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카드가 체크카드인줄 알았다. 계좌 잔액 이상 긁어도 결제가 되길래 부모님이 용돈을 보내준 걸로 여겨 감사전화를 했더니 송금한 일이 없단다. 그제서야 자신의 계좌 잔고가 0원이고, 체크카드는 신용카드로 변한 걸 알았다. 그는 "카드사에 항의했더니 일정금액 이상 결제하면 신용카드로 바뀌는 걸 설명했다는데, 들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도 있다고 여겨 신용카드 기능을 없애달라고 했지만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대학생 신용카드 발급은 숫제 '안되면 되게 하라'다. 일정한 소득이 없어도, 예금이 부족해도, 심지어 굳이 원하지 않아도 만들 수 있다. 대학가엔 2003년 카드대란 당시처럼 카드모집 아줌마까지 등장했다. 카드시장 포화와 과당경쟁이 빚은 어두운 그늘이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과 카드사들은 "극히 일부 사례"라고 애써 외면한다.
과연 그럴까. 소득이 없어도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지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대학가 주변 시중은행 5곳을 직접 방문했다. 모두 "일정한 소득이 없어도 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체크카드를 발급하면 될 텐데 굳이 신용카드를 권했다. 또 다른 발급 잣대인 예금 잔고 역시 은행마다 제 각각이고 기준에 못 미쳐도 방법을 알려줬다. 모 은행 창구에선 "하루 한 명 신용카드 만들기 캠페인을 하는 중이니, 퇴근 할 수 있도록 꼭 만들고 가라"고 놓아주지 않았다.
발급이 목적이다 보니 혜택 강조에만 혈안이 돼 정작 중요한 위험 고지나 상품구조에 대한 설명엔 인색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캠페인이 걸리면 무조건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을 안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털어놓았다.
취재에 응한 대학생들은 "신용카드 발급은 쉬워도 사후 관리는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다못해 체크카드에서 신용카드로 넘어가면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발급을 권할 땐 천사였다가 연체가 되면 악마로 변하는 은행과 카드사의 이중성도 꼬집었다.
물론 능력을 벗어난 대학생들의 과소비도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그릇된 소비습관으로 연체자가 늘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대학생처럼 소득이 적고 불안정하다면 신용카드 발급을 억제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카드사가 소득이 있다고 판단해 신용카드를 발급했더라도, 소득이 끊기거나 줄면 매달, 혹은 매 분기마다 이용한도를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소득 유무 등 변동사항을 대학생만 따로 관리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이윤경(한국외대 중국어과 4)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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