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간 약값 총 12조3,310억원 중에서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합성신약에 지급된 돈은 단 327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로 따지면 0.26%이다. 천연물신약 1,100억원을 포함해도 겨우 1.15%다. 복제약값을 높게 책정해온 정부의 보호정책에 안주해 신약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국내 제약산업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수치이다. 정부는 약가인하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 강화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8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따르면 건강보험 약제비에서 해외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신약, 특허만료된 신약)이 차지하는 비율은 최대 60%로 추산된다. 7조원 남짓이다. 국내 복제약은 건보 약제비의 38.5%, 신약은 1.15%이니, 다국적 약품들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의약품시장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정부는 그 동안 복제약값을 높이 책정해 국내 제약업계를 보호하던 정책을 폐기하고, 향후 신약개발 지원에 초점을 맞춰 제약사 옥석가리기로 정책을 선회한 상태다. 내년부터 약값을 평균 14% 내리는 대신 앞으로 9년간 국비 5,300억원을 투입해 10개 이상 신약개발을 추진하고, 매출액의 일정 규모 이상을 연구ㆍ개발에 투자하면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해 지원하는 내용의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추진하겠다는 대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정책방향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신약개발 활성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숱한 난관이 가로막고 있다.
우선 제약업계는 약가인하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약개발보다 정부와의 소송전에 더 많은 비용을 쏟을 것이라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제약협회는 정부가 약가인하 고시를 하면 바로 소송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 국내 대형 법무법인들이 앞다퉈 '소송 따기' 전쟁에 나섰을 정도다.
신약 개발이 쉽지 않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국내 대형제약회사 관계자는 "이제 웬만한 약효 물질들은 거의 찾아서 다국적 기업들도 요즘은 신약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며 "게다가 신약개발에는 통상 15년 정도 걸리지만 타격은 당장 내년부터 아니냐"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신약의 특허 만료 전 복제약 출시가 까다로워졌다는 점도 제약업계의 반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관리학과 교수는 "약가인하 정책을 10년 전에 실행했다면 (복제약이 아닌 신약 개발에 눈을 돌려서) 국내 제약사 중 3~4개 신약개발 강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김 교수는 FTA대책에 대해 "경쟁력 있는 제약사는 신약개발로 방향을 잡아야 하며, 중소제약사는 개량신약이나 미국 외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약품을 복제약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내 출시가 까다로워지는 복제약은 중국, 인도 등의 싼 복제약을 수입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김지은기자 lu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