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했다. 꽃은 져도 봄이 오면 다시 피건만 사람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니, 원통하고 절통하다. 하여 이승의 미련을 떨치고 좋은 데로 가라고 산 자들이 해주는 것이 오구굿이다.
26일 밤 서울 대치동의 공연장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동해안 오구굿이 벌어졌다. 굿도 보통 굿이 아닌 것이, 무려 20시간의 무박 2일 큰 판이 펼쳐졌다. 오후 6시에 시작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굿을 마친 시간이 오후 2시, 가히 기네스 기록감이다. 굿을 보기 힘들어진 요즘도 동해안 지역에서는 마을굿인 별신굿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구굿은 드물다. 어쩌다 해도 짧게 줄여서 하는데, 이번에는 순서를 빼거나 줄이지 않고 완판으로 갔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이세섭)이 마련한 귀한 자리다.
그 긴 시간 동안 굿을 한 무녀와 악사들도 대단하지만, 관객도 장하다. 250여명이 보러 들어와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이 150여명. 자정 지나 새벽 서너 시를 넘기자 의자에 앉은 채 코를 곯거나 로비로 나가 긴 의자에 쓰러져 자던 이들도 도로 깨어 굿판을 함께했다.
이 성대한 굿을 받은 망자는 2005년 세상을 떠난 동해안별신굿의 인간문화재 김석출. 그의 무업을 이어 받은 세 딸 김영희, 김동연, 김동언과 아들, 조카인 양중(남자 악사) 김용택, 사위 등 김씨 일가가 굿을 했다.
동해안 오구굿의 제차는 첫 순서인 망자자리말기부터 잡신들을 풀어먹이는 마지막 거리해반굿까지 총 스물 네 거리. 망자자리말기를 맡은 김석출의 큰딸 김영희 무녀는 선친의 옷과 종이에 오린 넋을 돗자리와 함께 말면서 댓바람에 눈물이 났다. "꽃이 피어도 못 오시고 잎이 피어도 못 오시고, 보고 싶은 아부지요, 어딜 가서 못 오시나. 온 자취도 모르고 간 자취도 모르고…."
동해안 오구굿의 정점은 망자를 불러 맺힌 한과 원을 풀고 극락왕생을 비는 초망자굿. 동해안 오구굿에만 있는, 복잡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한 드렁갱이장단이 나오는 순서다. 폭발하듯 격렬한 드렁갱이장단이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쳐 춤을 추는 무녀도 지켜보는 이들도 모두 무아경에 빠졌다.
이번 초망자굿은 관객들도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의 이름을 한지에 사연과 함께 써서 넋전을 올렸다. 넋전으로 올린 30여명의 망자 중에는 최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원정대의 박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두 대원도 들어갔다. 박영석 원정대에 동행했던 사진작가 이한구씨가 써낸 것이다. 넋전을 말아둔 돗자리는 무녀가 넋일받기 순서에서 풀어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 사연을 읽어주며 극락왕생을 축원하고 유족들에게 명과 복을 빌어줬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흐느끼고 눈물을 훔치는 동안 산 자들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으리라.
초망자굿과 함께 오구굿의 핵심인 바리데기 풀이는 발원굿에서 한다. 딸만 내리 여섯을 낳은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림받은 공주 바리데기가 저승에 가서 생명수와 꽃을 구해와 죽은 아버지를 살려내는 설화다. 다 하는 데 보통 세 시간이 걸리는 장대한 서사무가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어마어마한 판타지를 이번엔 2시간 반 동안 했다. 바리공주 무가를 할 때쯤이면 구경하는 이들도 다 곯아 떨어져 무녀 혼자 녹화 카메라만 보고 하기 일쑤. 이번엔 달랐다. 다들 눈이 뚫어져라 지켜봤으니, "굿을 숱하게 해봤지만 바리데기 풀이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깨어서 듣는 건 평생 처음"이라는 무녀의 말이 그저 하는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귀신도 잘 놀아야 아무 미련 없이 즐겁게 저승으로 갈 터, 오구굿에도 신명이 빠질 수 없다. 망자를 천도하려면 극락소리가 필요하다며 노래를 하는데, 민요로 시작해 트로트로 넘어간다. 무녀가 '돌아와요 부산항에' '어머나' '남행열차' 같은 노래를 잇따라 불러 흥을 돋우니 보는 사람들 어깨가 우줄우줄, 엉덩이가 들썩, 노래 끝에 익살스런 병신춤까지 나오니 폭소가 터졌다.
발원굿에 이어 시무염불, 망자대받기, 판염불까지 하고 나면 다음은 망자와 굿에 불려온 신들을 즐겁게 놀려서 돌려보내는 순서다. 꽃노래굿, 초롱등노래굿, 가는뱃노래굿, 팔각등노래굿을 차례로 해서 잘 논 다음 무녀가 긴 무명천을 몸으로 가르는 길가름을 한다. 이어 꽹과리를 치면서 염불하는 양중(남자 악사)을 따라 유족들이 한 바퀴 돌면서 망자와 이별하는 전정밟기를 한다. 제단을 장식한 색색깔 지화(종이꽃)를 뽑아 손에 든 유족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지장보살을 불렀다.
장장 20시간의 굿은 27일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모두 끝났다. 중간에 밤 10시, 새벽 4시와 오전 9시, 세 차례에 걸쳐 요기를 했다. 극장이 관객에게 세 끼 밥 대접하면서 공연한 예도 없으려니와, 그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행색이 볼 만했다. 얼굴은 해쓱하고 눈은 퀭한데도 알지 못할 어떤 기운이 받쳐주는 듯 표정이 생생했다. 지쳐서 졸다가도 깨어 무당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을 받아 부르던 이 진짜배기 관객들 덕분에 굿이 굿답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있는 굿판을 언제 다시 보랴. 다들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오미환 선임기자 ohm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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