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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미 FTA 발효 1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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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미 FTA 발효 10년 후

입력
2011.11.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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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가 무슨 권리로 특정 건강보험을 강요하는가.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위헌이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이듬해까지 미국 대학에서 연수를건하며 건강보험 개혁을 둘러싼 공화ㆍ민주 양당의 논쟁을 지켜봤다. 기자에겐 너무나 당연한 기본적 권리인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중산층 공화당 지지자들의 질긴 반대는 놀라웠다. 건강보험은 개인이 선택하는 '서비스상품'인데, 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항변이었다. 개인과 기업의 상거래 활동 등 그들이 생각하는 (미국식) 자유는 우리가 공공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곳을 포함하는, 훨씬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것이었다. 정부 규제의 최소화와 시장자유의 극대화로 나타나는 이같은 사고방식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협정(FTA)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미 건강보험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미FTA 비준동의안 국회 기습 통과 후에도 사그러들지 않는 FTA 반대론 때문이다. 물론 기자는 일각의 주장처럼 FTA가 발효되면 미국처럼 의료서비스가 민영화한다거나, 건강보험시스템이 붕괴된다고 보지 않는다. 당장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보건ㆍ의료서비스는 이번 FTA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데다, 우리의 건강보험은 전국민이 가입하는 강제보험인 만큼 임의가입이나 자유탈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10년 후를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의료 기술ㆍ서비스의 발전추세로 보나, 고령화로 인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돼야 하는 현실을 볼 때 현 수준의 규제가 앞으로 지속돼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민간영역에서 쏟아질 의료서비스 관련 보험상품에 대한 새 규제가 FTA로 인해 예전처럼 쉽지 않으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나아가 FTA 발효 후 2020년쯤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예견하기는 난망한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가 제도나 법, 관행 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미국화'가 진행돼 있을 것은 분명하다. 우선 법률, 회계, 각종 컨설팅 등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서비스영역은 거의 미국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미국식 스탠다드가 생활 깊숙이 자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전기 수도 등 공공서비스 영역의 상당 부분도 도전 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공공서비스정책 등은 투자자ㆍ국가소송제(ISD)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기는 어려워도 그 반대 방향은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관세 철폐로 대표되는 FTA의 발효는 1997년 강제적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지만 향후 10년간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승자와 패자로 나누며 IMF 못지 않게 각 부문의 구조조정 등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때문에 FTA가 공공영역과 정부역할을 축소시켜 양극화를 더 부채질할 것이라는 주장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이뤄졌다고 어물쩍 끝내서는 안 된다. "ISD 문제를 미국과 논의해보겠다"는 식의 안이한 자세는 더더욱 안된다. 배수진을 치고 양극화 완화 등 동반성장에 꼭 필요한, 그러나 FTA로 무력화 가능성이 있는 법률들을 비롯해 우리의 공적 영역을 지켜낼 수단들을 확보하려는 재협상 노력이 끈질기게 전개되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10년 뒤의 한국사회가 미국식 승자 독식의 카지노 자본주의나, 약자와 소수를 나 몰라라 하는 비정한 자본주의는 아닐테니 말이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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