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 경북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서현축산단지. 1년 전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파동의 진원지인 이곳에는 단지 입구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왔느냐"며 따지듯 묻는 경비원과 차량소독을 거쳐 축산단지에 들어서자 '서현양돈단지 재입식 결사반대'라고 쓰인 플래카드와 석회만 잔뜩 뿌려놓은 텅빈 축사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6개 양돈농가가 1만4,0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던 이곳은 이제 2개 농가만 겨우 362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소규모 영세 단지로 퇴락,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구제역 파동을 겪은 뒤 안동시와 인근 주민들은 고질적인 악취와 수질오염을 이유로 단지 이전을 권고하고 있지만 70억원에 이르는 이전 비용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러는 가운데 두 축산농가가 씨돼지를 입식, 사육에 나서면서 주민들 사이의 마찰도 우려되고 있다.
지난해 1만3,000여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한 인근 영주지역 S양돈도 축사청소와 소독을 마쳤으나 주민 반발로 선뜻 재(再)입식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미 축산폐수 무단방류를 이유로 S양돈을 3차례 고발까지 했다. 재입식이 시작될 경우 반대집회 등 집단 반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경북 북부지역 축산업의 뿌리가 휘청거리고 있다. 안동에서는 지난해 구제역으로 한우 3만4,418마리, 돼지 10만2,738마리가 매몰됐다. 한우 65%, 돼지 92%가 줄어든 것이다. 구제역 발생 전 2,250곳이던 한우 사육농가는 현재 30%나 줄어든 1,620곳에 불과하다. 씨돼지 가격이 폭등해 뒤늦어서야 겨우 1만여마리의 씨돼지를 새로 키우게 된 안동의 양돈단지도 옛날의 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때 "살처분 보상금으로 일부 농민들이 벼락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농가들은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소 270마리를 살처분한 권모(68ㆍ안동시 서후면)씨는 "사료값이 올랐고, 6개월마다 백신 예방접종에 따른 인건비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실시하는 소독비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다 송아지 가격마저 떨어져 보상비를 다 까먹고 있다"고 허탈해했다. 여기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국회 통과로 축산농가의 타격이 우려되면서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가고 있다.
1년이 다 되도록 구제역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축산농민들은 이제 소가 침만 흘려도 식은 땀을 흘린다.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에서 소 14마리를 키우는 한 농가에서는 평소와 달리 사료를 잘 먹지 않고 침을 흘리는 소를 보고 당장 방역당국에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으나 음성으로 밝혀졌다. 구제역 발병이 쉬운 겨울을 앞두고 이날부터 지금까지 한달 사이에 안동과 청송, 영양 등 경북에서만 의심신고가 5건이나 들어오는 등 전국 축산농민들이 구제역 노이로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겨울 내내 행정력을 총동원했던 지자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경북도는 27일 농가는 매일, 방역본부는 매주 한 차례, 지자체는 매달 한 차례 이상 사육가축의 이상 징후를 모니터링하는 3중 감시체제를 구축했다. 28일 안동 탈춤공연장에서는 '구제역 가상방역현장훈련(CPX)'도 열린다.
안동=권정식기자 kwonjs@hk.co.kr
영주=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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