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反FTA 시위 현장에서 무슨 일 있었나
26일 밤 9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 박건찬 종로경찰서 서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야당 대표들을 만나기 위해 이순신 동상 부근의 시위대 뒤편에 들어서자 욕설과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 서장이 "종로서장이다. 의원님 만나러 간다"고 말했지만 "조현오, 와서 같이 물대포 맞자!" "매국노"라는 등의 야유가 계속됐다. 박 서장이 사복경찰 10여명의 경호를 받으며 시위대 선두 2~3m 부근까지 왔을 때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손을 뻗어 박 서장의 정복 모자를 벗겼고, 머리와 어깨 등을 때리면서 안경이 벗겨지고 어깨의 계급장도 떨어졌다.
박 서장이 시위대를 빠져나와 세종로파출소로 피신하기까지 10분가량 이어진 이 날의 사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위대에게 물대포가 발사된 지난 23일 집회를 비롯해, 한미 FTA 비준 이후 열린 다섯 차례의 집회는 모두 서울광장과 을지로 등 종로서 관할이 아닌 곳에서 열렸다. 종로서 관할인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것은 2009년 8월 광장 개장 후 처음이다. 종로서는 이날 차벽으로 광장 봉쇄를 시도하고 수 차례 해산 경고를 했지만 물대포를 쏘지는 않았다. 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박 서장이 나타났을 때 조현오 청장의 이름을 연발했고, 당시 경호하는 사복경찰에 둘러싸인 박 서장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이 박 서장을 '불법 시위에 대한 엄정 대처'를 강조해 온 조 청장으로 오인해 폭행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박 서장이 경찰 정복을 입고 시위대 한가운데로 들어간 데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박 서장은 "관할 서장으로서 불법 행위에 대해 의원들을 설득하러 가는데 참가자들이 폭력을 행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업무를 보는데 제복을 입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관계자는 "서장이 분노한 시위대 가운데로 들어온 것 자체가 관례에 없는 난데없는 일"이라며 "시위대를 자극해 폭력을 유도하고, 결국 시위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저열한 꼼수"라고 주장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종로서장 왜 정복 입고 시위 군중 헤집고 들어갔나. 성난 군중이 예의 다해 정중히 모실 줄 알았나"(@ghy***) 등 서장의 의도를 의심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래도 폭력은 잘못됐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등 폭행 책임 소재를 놓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경찰은 박 서장 폭행 당사자뿐 아니라 주최 측에도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경찰장비 훼손 등에 대해서도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장녀 수진(21ㆍ서울대 사회과학대)씨 등 집회 현장에서 연행한 참가자 19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이번 폭행 사태를 계기로 폭력 시위에 더욱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6일의 경우 경찰이 물포 사용을 자제하자 경찰과 시위대 간 직접 대치로 이어져 경찰관 폭행, 경찰 장비 훼손, 극심한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고 말해 물대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폭행 사태의 원인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경찰은 최근 FTA 반대 집회에서 물대포를 사용했다가 엄동설한에 과잉진압이라는 비판이 일자 사용을 자제했으나, 다시 강경 대응하겠다는 의도를 비친 것이다. 그러나 범국본은 "폭행 사건은 종로서장의 자작극"이라며 "오히려 경찰이야말로 시민들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그런 상황 오면 다시 들어갈 것" 종로서장 밝혀
"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종로경찰서장으로서 언제든지 다시 (시위 현장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박건찬 종로서장은 시위대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시위대 가운데로 들어갔다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7일 이같이 밝혔다.
그는 "서울의 중심부인 세종로 사거리에서 대규모 불법 집회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관할 서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서장은 "의원들을 설득해 원만히 해결하려던 의도였는데 시위 참가자들이 그렇게 폭행을 할 줄은 몰랐다"며 "(폭행 당시) 너무 경황이 없어 가해자들에 대한 (현장) 검거를 지휘하지도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그는 "앞으로도 종로서장으로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임무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서장은 경찰대 4기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종로서장으로 부임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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