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도가니> 제작자인 엄용훈씨(삼거리픽쳐스 대표)가 신영균문화예술재단에 장학금 200만원을 내놨다. 수백억, 수천억 원 기부에 비하면 정말 별것 아니다. <도가니> 의 흥행 성공을 감안하면 쩨쩨하게 보일 정도이지만, 그 사연이 재미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너무 어려웠다. 그런 그에게 신영균문화예술재단이 여고생 딸을 위해 장학금을 주었다. 그게 너무 고마워 수입이 생기자마자 돈을 내놨다. 자신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영화인 자녀에게 주라는 것이다. 도움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두 배로 되돌려주는 기부다. 도가니> 도가니>
■ 지금까지 신영균문화예술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영화·연극인 자녀는 대학생과 고교생을 합쳐 35명이다. 그 가운데는 사회 비판적 시각을 포기하지 않는 <이태원 살인사건> 의 홍기선 감독과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인 정승일 감독의 아들도 있다. 고 허장강의 손자이자 허진호의 조카도 두 번 연속 받았다. 물론 금액은 고교생 100만원, 대학생 250만원으로 그리 크지 않고 수혜자도 많지는 않지만, 이 장학금이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인 세대, 이념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영화인들은 말한다. 실제 수혜자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편견이나 차별도 없다. 이태원>
■ 지난해 10월 신영균씨가 500억 원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을 때만해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영화인들이 많았다. 현금도 아니고 건물, 명보극장이어서 형식 만의 생색내기에 불과할지 모른다며 재단 활동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영화인들로 구성된 이사들은 출범 한 달 만인 올해 3월부터 바로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고, 이어 1년에 세 번 우수단편영화를 선정해 지원하는 필림게이트 사업과 체험학습 꿈나무 필름아트캠프도 열었다. 원래 신영균씨의 기부 목적도 영화 인재육성과 발굴이었다. 어쩌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 그렇다고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 어설픈 과시보다는 단 열 사람의 영화·연극인에게 보람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신영균씨의 마음도 같다. 기부를 결심한 것 역시 한국영화의 힘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는 소리도 들려 서운하기도 했지만, 영화 인생을 이렇게 마무리 한 것이 역시 잘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신이 그렇게 바라는 영화인들의 화합과 영화인들의 작은 선행까지 이끌어내고 있으니. 기부만이 줄 수 있는 보너스이고, 기부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일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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