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등으로 갈등을 빚던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파국 직전에 이르렀다.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이 26일(현지시간) 자국 군인 24명 이상을 숨지게 한 것과 관련, 파키스탄이 미국 및 NATO와의 동맹관계를 전면 재검토키로 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미국은 즉각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 지원을 약속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NATO군 헬리콥터와 전투기가 아프간 국경에서 2.5㎞ 떨어진 파키스탄 북서부 모흐만드의 초소 2곳을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파키스탄 군인 24명 이상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NATO가 이끄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카르스텐 야콥슨 대변인은 "지상군의 요청에 따른 NATO군의 공습으로 희생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실상 NATO군의 공격이었음을 인정했다.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NATO군이 파키스탄 군을 탈레반 무장세력으로 오인하고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자 심각한 주권 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존 알렌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아쉬파크 카야니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을 만나 상호 협력을 논의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터진 일이기 때문에 파키스탄에서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유수프 라자 길라니 총리는 군 수뇌부를 포함한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 사태를 논의한 뒤 즉각 국경을 봉쇄해 아프간 NATO군의 주요 보급로를 차단했다. 아프간에는 13만명의 NATO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아라비아해 항구인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를 거쳐 군수품을 보급받아왔다. 이번 사태로 비롯된 양국간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군수품 조달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파키스탄은 또 캐머런 문터 파키스탄 주재 미 대사를 소환해 강력 항의하고, 무인기 기지로 이용하던 자국의 샴시 공군기지에서 15일 안에 철수하라고 미군 측에 통보했다. 아울러 외교, 정치, 군사, 정보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및 NATO ISAF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과 활동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27일 국방장관과 국무장관 명의의 공동성명에서 애도를 전하고 NATO의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등 사태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미국은 성명에서 "상호 이익을 증진시키는 양국의 동반자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 앞으로도 파키스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미 중앙정보국(CIA) 계약 직원이 1월 파키스탄 청년 2명을 살해한 사건, 5월 미 해군 특수부대가 사전 경고 없이 파키스탄 은신처에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사건 등으로 마찰을 빚어왔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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