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진정되는 듯싶던 우리 금융시장이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외국인 자금이 4조원 가까이 이탈했고, 국가 위험지표에는 다시 빨간 불이 켜졌다. 금융당국도 위기 대응의 고삐를 바짝 죄기 시작했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25일까지 외국인들은 주식시장에서 3조6,140억원, 채권시장에서 1,224억원 등 국내 금융시장에서 모두 3조7,364억원 어치를 팔고 나갔다. 10월 순매수로 돌아섰던 외국인들이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8월(-5조7,905억원)에 버금가는 ‘팔자 행진’에 다시 나선 것이다.
‘바이(Bye) 코리아’는 유럽계 자금이 주도했다. 주식시장에서 2조5,011억원, 채권시장에서 1,427억원을 팔아 치우며 외국인 전체 순매도액의 70% 이상을 점했다. 재정위기 확산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유럽계 은행들이 해외에 투자한 자금을 급격히 회수해 간 것이다. 미국계 자금도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총 7,551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연구원은 “재정위기 해결책에 대한 합의가 늦어질수록 유럽 은행들의 자본확충 부담은 커지고 한국에서의 자금 이탈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위험지표도 다시 상승하고 있다. 5년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말 128bp(1bp=0.01%)까지 떨어졌으나, 이 달 들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더니 25일 현재 177bp까지 치솟았다. 10월 4일 기록한 고점(229bp)과는 아직 거리가 있지만, 유럽 재정위기 발생 이전 100bp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CDS는 채권 부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일종의 보험으로, 프리미엄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신용 위험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위험지표인 외평채 가산금리 역시 고공 행진 중이다. 2014년 만기 외평채 가산금리는 25일 현재 175bp로 지난달 말(162bp)보다 13bp 올랐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높아진 것이다.
외환시장도 연일 출렁댄다. 글로벌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이 높아진 데다 외국인들의 자금 이탈로 달러 환전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지난달 말 1,100원선 붕괴까지 위협받던 원ㆍ달러 환율은 6영업일 연속 상승하며 1,164.8원까지 치솟았다.
금융시장의 변화 폭이 커지자 금융감독당국도 분주해졌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매 분기 3,000억원 가량 추가로 쌓던 대손준비금(미래 부실에 대비한 준비금)을 4분기에는 평소보다 5배나 많은 1조5,000억원 가량 쌓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유럽 재정위기가 최악의 국면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비, 은행들이 최악의 조건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에도 조만간 착수할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까지 은행들의 건전성 지표가 눈에 띄게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유럽 재정위기의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만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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