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별로 좋은 징후가 아니라는데 늘 그렇다."
요즘 주변에서 막연히 '우울하다, 즐거운 일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개인별로 원인은 다르겠지만 경제 침체기가 지속되면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집단 우울증세의 하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에서는 이미 '경제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흔히 쓰인다. 물론 이 같은 집단 우울증으로 개개인이 병원에서 치료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가슴이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낙'이 없는 현상이 계속되면 한번쯤 의심해볼 일이다. 여기에 한 두 가지 추가적인 충격요인이 가해질 경우는 좀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2006년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소규모 건설사업을 진행해왔으나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 이후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김모(48)씨는"계속 이자 부담만 늘어나고 사업은 진척이 없어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 조만간 인생의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삶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김씨처럼 막판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승자보다는 패자가, 가진 자보다는 못 가진 자가 점점 늘어나게 되어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 집단 우울증이 싹트는 것이다. 경제 침체기에 흔히 나타나는 이 같은 집단 우울증이 계속 되는 것은 치열한 대학입시, 경제난, 취업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이 좀처럼 해결기미를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춘 콘서트'를 진행했던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도 우리 사회의 집단우울증이 심각한 상황에 와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정신과 의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공식 통계에 잡히는 수치보다 실제 상황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목표중심주의 등으로 목표가 최우선시 되는 과정에서 서로 경쟁자가 되고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우울증에 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의 진료인원과 총 진료비가 각각 연평균 4%, 10.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인원은 2005년 43만 5,000명에서 2009년 50만 8,000명으로 7만 3,000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평균 약1 만8,000명씩 환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인들(70대 이상)의 연평균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13.6%로 가장 높게 나타나 발병이 급격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낙인이 찍힐까 우려해 병원을 가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내놓은 '국내 우울증의 질병 부담과 치료현황'을 보면 평생 한 번이라도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약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5~59세의 장년층 가운데 22%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선진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선진국의 질병관련 비용의 15% 이상이 정신질환 때문에 발생한다. 세계적으로 1억 2,000만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매년 100만명이 자살하며 영국인의 10%는 삶의 변화속도를 이기지 못해 신경쇠약 직전상태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경제가 좋지 않으면 가장 큰 문제가 소득이 될 수 밖에 없다. 2009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연간 소득 2만4,000달러 이하인 미국인들 가운데 30%가 우울증을 겪는데 반해, 연간 소득 6만달러 이상인 사람들 중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1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적으면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소득이 만족의 척도는 아닐 것이다. 만족은 가진 것/욕망, 즉 욕망으로 가진 것을 나눈 것이라고 했다. 즉 이론상으로는 가진 것이 커지지 않거나 줄어들 때는 욕망을 대폭 줄이면 만족도가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욕망을 줄여도 가진 것이 너무 부족하다면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우울증도 방치하면 자살 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2009년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6명으로 OECD 평균인 11.2명의 2배 이상 높았다.
김영진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에서 "때로는 기분이 처지고, 자신이 열등하며 비참하게 느껴지고,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으로 침울하고 슬픈 기분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는 오히려 현 상태에 머물지 말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검토와 반성, 기존 목표의 조정, 시도했던 행동의 철수, 새로운 계획이나 방향의 설정이 필요함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라"고 주문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비전과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치가 표류하는 것도 집단우울증의 원인"이라며 "소득격차를 줄이고 계층갈등을 완화하는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우울증 진단법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Ⅳ-TR)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1번과 2번 중에 하나는 반드시 포함되고, 다섯 가지 이상이 나타나면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본다. 한번 체크해볼 필요가 있겠다.
1)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
2)삶에 대한 흥미 감소
3)체중감소나 증가
4)불면ㆍ과수면
5)정신운동초조 또는 지체
6)피로감
7)무가치감 또는 자책
8)사고-주의집중력 감퇴
9)자살시도ㆍ자살계획 또는 반복적 자살사고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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