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졸레, 아 보트르 쌍떼(건배)!"
17일 밤 0시 프랑스 보졸레 지역의 옛 수도 '보죠(Beaujeu)'의 중앙광장. 쌀쌀한 날씨 속에 광장을 가득 메운 수 천명의 인파가 일제히 "10, 9, 8…3, 2, 1!" 카운트다운을 외치자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어 0시 정각을 기해 이 지역 농장주들이 관광객을 위해 무료로 내놓은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잔을 높이 들었다. 광대 차림의 현지인들, 나란히 손을 잡은 이웃 나라 벨기에 연인들, 마냥 신기한 듯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중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축제를 즐겼다.
보졸레 누보 축제는 올해로 60년째를 맞았다.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 0시 정각부터 프랑스 및 전세계에서 판매가 시작되는 보졸레 누보. 그 해에 수확한 햇포도로 만든 와인을 말한다. 특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조량과 강수량으로 보졸레 지역 사람들의 말처럼 '거의 완벽한 와인'으로 꼽힌다. 보졸레 지역에선 2009년 빈티지를 최고의 와인으로 치지만, 작년과 올해 와인도 이에 못지 않게 훌륭하다고 한다.
보졸레 와인은 갸메(Gamay)라는 단일 포도품종으로 만들어진다. 이는 과일향이 풍부하면서도 쓴맛이 나는 탄닌이 거의 없는 보졸레 누보와 최소 2년부터 최대 10년까지도 숙성을 할 수 있는 보졸레 와인으로 나뉜다. 보졸레 누보 축제는 '보졸레 와인=보졸레 누보'이라는 선입견이 잘못됐다는 걸 알리는 무대이기도 하다.
보졸레 와인을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의 중심엔 보졸레와인협회(Inter Beaujolais)가 있다. 지난 1959년 창설된 이 협회는 66년 파리에 소재한 250개의 와인샵에서 처음으로 보졸레 누보 출시를 기념하는 프로모션 행사를 열었다. 이런 홍보활동은 현재 프랑스, 독일, 영국, 벨기에, 미국, 중국 등에 있는 204개의 '비스트로(레스토랑) 보졸레'가 담긴 가이드 북을 만들어 배포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 세계를 무대로 보졸레 와인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오렐리 바브르 보졸레와인협회의 아시아지역 총괄 담당자는 "전 세계에서 보졸레 와인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레스토랑의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며 "아시아에선 중국에 한 곳이 있는데 조만간 한국에서도 '비스트로 보졸레'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졸레와인협회는 보졸레 누보가 출시되는 시기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다. 이번 축제에 맞춰서도 한국과 중국, 벨기에 등 각국의 취재진을 초대해 다양한 도멘(Domaineㆍ포도원)과 샤또(Châteauㆍ포도밭과 양조장)를 공개했다. '도멘 드 라 마돈느' '도멘 장-뤽 롱제르' '도멘 데 꼬또 드 크뤼' '샤또 드 보르나르' '샤또 드 레끌레르' '샤또 드 라 셰즈' '샤또 드 삐제' 등 10여개의 포도주 농가를 소개했다.
신기한 것은 이들 보졸레 와인들의 맛이 농장마다 천양지차라는 점. 농장주들은 일일이 보졸레 와인의 시음을 권하며 "품종과 떼루아(Terroirㆍ 포도재배요소로 꼽히는 지리, 기후, 재배법을 통칭), 농장주의 전통적인 양조법에 따라 맛과 향이 결정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보졸레 누보가 출시되기 전 농장주들에겐 각국 취재진의 방문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전초전인 셈.
보졸레와인협회는 이번 보졸레 누보 축제를 TV방송과 라디오, 인터넷, 아이폰 어플리케이션, 포스터 캠페인을 통해 적극 홍보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보졸레 누보 축제가 프랑스에서만 열리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도 서울과 부산 등 크고 작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소규모로 치러진다.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SOPEXA)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초반 보졸레 누보를 46만병이나 수입했던 때와 비교하면 현재는 적은 양이지만 누보 축제를 즐기는 마니아층은 여전히 두텁다. 특히 일본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보졸레 누보 축제가 성행하고 있다.
보졸레와인협회가 일본에 애착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은 지난 1985년부터 보졸레 누보를 수입한 이후 제1의 수입국이 됐다. 보졸레와인협회에 따르면 2010년 보졸레 누보는 전세계 110개국에 총 115,500hl(헥토리터:와인측량의 표준단위)로 1,550만병이 수출되는데, 일본에 그의 반 정도인 700만병이 수출된다. 장 부르자드 보졸레와인협회 상무이사는 "일본에 수출되는 물량은 상당한 양으로, 보졸레 누보 축제때 3분의 2이상이 판매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여전히 한국시장도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에서 보졸레 누보에 대한 열기는 사라진 지 오래. 그 자리는 신대륙 와인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나 칠레, 호주 등은 이 보르도 와인 제조의 장점만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제품을 생산, 한국에 수출한다. 한국이 이들 신대륙의 와인을 선호하는 것도 탄닌과 더불어 깊은 보르도 와인 스타일의 향과 맛이 존재하기 때문. 하지만 협회측에선 다시 한국에서도 일본과 같은 꾸준한 보졸레 누보 열풍이 불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장 부르자드 상무이사는 "보졸레 누보는 풍부한 과일향과 신선한 맛으로 모든 음식과 궁합이 맞는 아이템"이라며 "도수도 평균 10~11도이며, 가격도 4~10유로(현지기준) 정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와인"이라고 덧붙였다.
보졸레(프랑스)=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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