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팀에서 5명씩 출전하는 한국바둑리그에서는 양팀 감독의 오더(출전 선수 명단)가 승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올해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한 포스코LED의 김성룡 감독은 시즌 내내 상대팀 오더를 정확히 예측해서 '족집게 감독', '오더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규 리그 최종전 포스코LED와 Kixx의 경기가 열렸던 지난 주말 한국기원 지하 1층 바둑리그 검토실에서 김성룡 감독을 만났다.
_올해 바둑리그서 상대팀 오더를 귀신같이 맞췄다는데, 정말 그랬나.
"총14라운드 가운데 여덟 번은 거의 완벽하게 내 예상대로 오더가 짜여졌고 네 경기는 완전히 틀렸다. 나머지 두 경기는 70% 정도 맞았다. 그러나 오더가 유리하다고 해서 다 이기는 건 아니더라. 여덟 판 중 여섯 번 이겼고 두 경기를 졌다. 예상이 어긋난 경기에서는 1승 3패를 해 결국 9승 5패로 리그를 마쳤다."
_듣고 보니 정말 대단한 예측력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일급 비밀이라 너무 자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처럼 우리 팀과 상대팀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열심히 궁리하면 대충 감이 잡힌다. 먼저 상대팀 감독의 입장에서 오더를 짠 다음 그것을 역으로 적용해서 우리팀 오더를 짰다. 특히 속기파로 알려진 백홍석을 거꾸로 장고 바둑에 많이 투입했는데 이게 적중해서 꽤 재미를 봤다."
_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가장 중요한 건 상대팀 주장이 몇 번에 나올 지를 예상해서 우리 팀 하위 지명자와 맞붙이는 것이다. 초반에는 좀 어려웠지만 중반 이후에는 선수들의 의무 출전 규정이 있어서 비교적 쉬웠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 온소진 선수에게 많이 미안하다. 초반에 온소진이 승운이 없었는지 계속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중반 이후에는 아예 상대팀 주장을 상대하는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에 성적이 더욱 나빠졌다. 정규 리그서 1승 10패를 했는데 상대팀 주장과 마주친 게 다섯 판이나 된다. 결과적으로 제 오더가 정확했기 때문에 손해를 본 셈이다. 대신 우리 팀의 다른 선수들이 좀더 쉬운 상대와 대결하게 돼 팀이 승리할 수 있었다."
_애당초 선수 선발이 잘 된 편인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정규 리그 개막에 앞서 회사측에 세 차례 선수 선발 예상 브리핑을 했다. 최종 보고된 내용이 백홍석과 온소진을 계속 보유할 경우 드래프트 순서 6번을 뽑으면 틀림 없이 우승이고, 5번이면 최소한 4강, 4번이면 꼴찌라고 했는데 드래프트 순서 추첨에서 하필 4번이 걸렸다. 이를 보고 포스코의 담당자가 크게 실망해서 아예 중간에 행사장을 나가 버렸다. 결국 선수 선발도 당초 예상과 거의 비슷하게 됐다. 그래서 처음에는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리그가 진행되면서 선수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주장 강동윤은 물론 노장 목진석과 김정현 백홍석이 모두 제 역할을 훌륭히 해 냈다."
_다른 팀과 달리 선수 기용을 철저히 실력 순으로 했다는데.
"1지명부터 3지명까지는 원칙적으로 전 경기 출전이고 두 자리는 나머지 선수 세 명이 매 라운드마다 1인당 세 판씩 예선전을 치러서 정했다. 실전과 같은 느낌을 갖도록 선발전 시작 시간을 본 경기와 똑같이 저녁 7시에 맞췄다. 나중에 상금 배분도 정규 리그에서 선수들이 거둔 성적을 정확히 반영키로 했다. 다만 오더 작전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던 온소진과 주형욱에게는 어느 정도 배려를 해주기로 동료 선수들이 양해했다."
_바둑 리그에 대한 회사의 관심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회사측의 뜨거운 관심과 적극적인 성원이 선수들에게 크게 자극제가 됐다. 매 라운드마다 이긴 선수에게는 회사에서 별도의 승리 수당이 지급된다. 팀이 이기면 감독도 특별 수당을 받는다. 구단주격인 포스코LED의 허남석 사장께서는 아마도 우리 팀 경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을 것이다. 우리 팀 이 이긴 날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포스코 임직원과 기우회 회원들로부터 평균 30건 정도 축하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바둑 리그 출전팀 가운데 그렇게 열성적인 후원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감독이나 선수들이 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싸우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_일찌기 젊은 나이에 스스로 보급 기사라 자칭해서 화제가 됐는데.
"어려서부터 바둑 뿐 아니라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마침 당시 바둑계에는 이창호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있었다. 나는 도저히 그의 적수가 안 될 것 같아서 일찌감치 보급의 길로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입단한 지 2년 정도 됐을 무렵 바둑책 기보와 해설 원고 교정을 봐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창호의 신수 신형> , <충암연구보고서> , <조훈현 포석법> 등 내가 정리한 책들이 엄청나게 팔렸다. 그 후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원고 요청이 쇄도해 대국료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아, 프로 기사로서 승부 외에도 다른 길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훈현> 충암연구보고서> 이창호의>
_TV 해설은 언제부터 했나.
"1995년에 처음 바둑TV '개국 특집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는데 '뭐 저런 이상한 녀석이 있느냐'는 평을 듣고 중도 하차했다. 그 후 한동안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는데 2002년에 지금 바둑TV 본부장을 맡고 있는 강헌주 PD로부터 제한 시간 10초 짜리 바둑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해설을 맡아 보라는 제의가 왔다. 이 프로가 뜻밖에 대박이 터졌다. 워낙 초속기인데다 아마추어들의 대국이어서 내 좌충우돌식 튀는 해설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를 계기로 TV해설자로서 입지를 굳히게 됐다."
_포스코LED는 정규 리그 1위이므로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한다. 26일부터 시작되는 포스트시즌 경기서 영남일보, 하이트진로, Kixx 중 어느 팀이 올라왔으면 좋겠나.
"기왕이면 하위팀이 올라오길 바라지만 결국은 2위팀 영남일보가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정규 리그서 두 번 다 이겼기 때문에 충분히 이길 자신 있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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