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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액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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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액자에 대하여

입력
2011.1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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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름 이름이 알려져 있는 한 사진작가의 작품 액자 하나가 우리 집에까지 왔다. 4인 식탁 크기와 맞먹을 정도의 꽤 큰 액자다. 오호라, 우리도 집에 작품사진이라는 걸 한번 걸어보나 싶은 찰나의 달뜨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아니. 이렇게 큰 걸 어쩌라고, 다 짐인데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바로 쳐들어왔다. 우리 형편에는 이런 작품사진 살 여력 없고, 걸 공간도 없고 하여 차라리 돈 십만원쯤이나 넣어주면 생활에 보탬 되고 좋으련만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 액자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은 남편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나 허락한 것에 대한 답례 같은 거였는데, 한 일에 비해서는 좀 거하게 돌아오지 않았나 싶다. 작품사진 가격이야 문외한이어서 전혀 모르지만 액자 값만도 십만원이 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시인이 자꾸 십만원 십만원 하며 돈 소리를 해대는 것에 뜨악해 하실지들 모르겠지만 시인도 돈 생각한다. 있는 시인들은 있어서 더 있었으면 싶어 하고, 없는 시인들은 없어서 골똘히 다 돈 생각한다. 아, 말 잘못했다. 다는 아니고 없어도 있어도 돈 소리 안 하고 돈 생각 안 하는 시인도 많을 것이니.

이야기가 어떻게 딴 데로 빠졌다. 여하튼 남편과 나는 액자 속 내용이 막 궁금해져서 몇 겹 포장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포장지가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풀었다. 풀기 전 남편과 나는 이 속의 것이 천상 극락을 왕래케 해줄 만치 영령한 빛을 뿜을지라도 절대 욕심내지 말자 누구한테든 주자고 첫말에 합의를 보아둔 상태였다. 단, 눈으로 직접 영령할 그 작품을 한번 봐두기는 해야지 않겠느냐는 토는 달았다. 하여 포장지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히 푸는 거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쩌자고 절대 궁합이 맞아떨어져버렸으니 흔쾌하기 짝이 없는 부부이려나.

이 사진액자를 어서 다른 누구한테 전하고 싶었다. 누구한테 주면 좋을까. 누가 이런 사진을 좋아할까. 고민 아닌 고민을 여러 날 하다가 자꾸 재지 말자고, 처음부터 마음에 딱 떠오른 J에게 줘야겠다고 결정했다. J라면 가까이 두고 즐겨할 것 같았다. 평소 고마운 일도 있고 했기에 좋은 기회라 여겨 전화를 넣었다. 그래도 일단 내용 설명하고 어떠하냐고 물어 보는 게 순서 같아서였다. 내가 이제 이런 물품들을 짐으로 여기듯 혹 지인에게도 같은 생각이 조금치라도 있다면 무조건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J는 내용을 좀 듣더니 뒤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정확하게 말했다. "물건은 받고 싶지 않아요. 물질은 받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한번 보기라도 하게 가지고 가겠다고 했더니 "보고 말고도 없어요. 짐이고 부담이에요." 라는 답을 받았다. 우리 부부로서는 귀한 것이라 여겨 J가 받아들였으면 했지만 J는 역시나 싶게 J다운 답을 주었다. 그 동안 지내본 관계로 십분 예상할 수 있는 답이기도 했다. 다만 우리 부부의 마음이 J를 첫 번째로 하고 싶었을 뿐인 것. 이렇게 하여 작품이 유찰되는가. 아니, 물건이 유찰되는가.

우리 집은 지금 거실벽 방벽이 책장으로 도배돼 있는데 심히 보기에 좋지 않다. 책 보지도 못하고 치우지도 못한다. 미처 읽어낼 새 없이 새 책들은 밀려오고, 젊은 날처럼 책을 맛있게 아껴 먹지 못한 지도 오래됐다. 버리지 못해 저리 싸놓고 있는데 결국은 버려야 할 짐이다. 책이 적고 물건이 적었던 지난 시절. 벽이 비고, 옷장 속 휑했어도 책 속 나라에 빠져 푸른 헤엄을 치던 정신의 깊은 기쁨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내가 의미롭게 변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사람들 사는 모습이 깊이는 사라지고 표면은 확실히 넘치는 것 같다.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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