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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블랙스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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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블랙스완'의 비극

입력
2011.11.2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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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화 <블랙스완> 이 생각난다. 섬뜩한 내면 표현과 놀라운 발레 실연으로 나탈리 포트만에게 지난 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그 영화다. 여러 시각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욕망의 억압과 일탈을 통해 인간 정체성의 모순을 보여주는 심리영화로 보았다. 포트만이 분한 주인공 니나를 억압한 기제는 모성이었다. 젊어서 니나를 임신, 프리마돈나의 꿈을 접고 사랑마저 잃은 그의 어머니는 이루지 못한 욕망을 온전히 딸에게 투사한다. 어머니의 꿈에 갇힌 딸은 오직 완벽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모든 개인적 욕구와 사생활을 희생당한다.

■ 그러므로 니나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긁어대 상처를 내는 강박증과 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거부하고 토하는 거식증은 상징적이다. 이는 현실에서는 밖으로 내보일 수 없는 욕망의 표출이자, 어머니에 대한 내면의 격렬한 저항이다. 니나는 결국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반항적 일탈행위들을 통해 비로소 어머니의 욕망과 분리된 진정한 자아의 독립에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뜻밖에도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끝 장면 니나의 자해는 끝내 의식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참혹한 자기파괴 행위였다(엔딩의 배경조차 산산이 깨진 거울 아니던가).

■ 고3 수험생의 친모살해 사건에도 동일한 심리구조가 깔려 있다. 남편과 결별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엄마에게 아이는 살아가야 할 단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아이의 서울대 법대 입학은 실패로 생각한 자기 인생을 한 방에 반전시킬 희망이었을 것이다. "네 인생을 위해서"라며 아이를 몰아댔다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강요한 것임을 엄마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닦달과 체벌을 아이는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한 채 그저 감당했던 것 같다. 아이의 자아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여지는 없었다.

■ 검증할 수 없는 아이의 일방 진술임을 감안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더라도 아이가 지난해까지 괜찮은 성적에 별 문제없던 모범생이었다는 점은 사건의 얼개를 대충 짐작케 한다. 사건 이후 전에 없던 장기 결석에 잦은 친구 초대, 칼 수집이나 비비탄총 난사 등은 그야말로 억압에서 놓여난 해방적 일탈행위로 볼 만하다. 흉악범죄의 원인을 걸핏하면 주변환경에 돌려 개인 책임을 회피케 하는 분석들을 못마땅하게 여겨왔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다르게 봐야 할 것 같다. 숱한 부모들이 자신의 욕망 속에 아이들을 가둬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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