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가서 볼 극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얘기를 듣는 제 가슴은 찢어집니다."('사물의 비밀'의 이영미 감독)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 극장가의 고질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개봉한 영화 '사물의 비밀'의 이영미 감독과 '량강도 아이들'의 제작자 김동현씨는 25일 오전 서울 충무로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 이른바 다양성 영화의 상영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물의 비밀'은) 개봉 1주일 전까지 50~100개 관을 계획했는데 개봉 직전에 20개도 안 되는 극장수가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상영 중인 극장에서도 "퐁당퐁당 상영이 돼 제대로 경쟁을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퐁당퐁당 상영'은 한 영화를 1개 상영관에서 하루 종일 상영하지 않고 다른 영화와 섞어 교차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수익을 우선으로 하는 극장들이 관객이 적게 드는 영화의 상영 시간대를 줄이는 편법으로, 관객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종영에 가까운 조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감독 등은 이날 ▦개봉 영화의 2주일 이상 상영 보장 ▦극장 체인을 운영하는 대기업이 만든 자사 영화와 다른 영화의 예매기간 및 전단배포 차별 철폐 ▦영화계 투자-제작-배급의 수직계열화 문제 해결 ▦스크린 독과점에 따른 중소형 영화상영 위축 문제 해소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회 구성 등을 촉구했다.
스크린 독과점과 교차상영 문제는 몇 년 전부터 국내 극장가의 뜨거운 감자다. 덩치 큰 영화들이나 유력한 투자배급사를 등에 업은 영화들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영화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2009년 '집행자'의 제작사 대표와 배우들이 항의 기자회견을 열면서 교차상영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올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3'가 전국 스크린의 67%를 차지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불렀다.
'집행자' 파문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실태 조사와 함께 해결책 마련을 지시했으나 이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올해 7월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김의석)가 독과점과 교차상영 문제 등의 해소를 위해 영화 한 편당 최소 1주일 상영 보장 등을 담은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을 발표했지만 말 그대로 권고안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영진위는 정부와 영화단체 등이 참여한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를 발족시키고 대안을 모색 중이나 아직은 가시적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영화계 비난의 화살은 극장보다 문화부 쪽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외치면서도 변죽만 울릴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문화부 장관이 의지만 있다면 공정거래위원장과 만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작은 영화도 상영을 어느 정도 보장 받을 수 있어야 영화 생태계가 건전해진다. 문화를 더 신경 써야 할 문화부가 시장의 논리만 앞세우는 모양새는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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