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표상의 문화지/나카베 다카유키 지음·박삼헌 등 옮김/소명출판 발행·376쪽·1만8,000원
'그 나라 산하의 형세 기후 제도 인정 풍속 등은 오래도록 무디고 가벼우며 더럽고 어두움에 가려진 곳이다.' '일종의 조선 특유의 악취가 처음으로 내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이래서는 과연 국가라 할 수 있는 조직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며 국민에게 진보와 개량에 대한 염원이나 청결에 대한 개념이 있을 것이며, 또한 후각이 있겠는가. 아닐 것이다.'
19세기 후반 일본인들의 조선견문록에는 이런 구절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조선이 '성격이 고상하고 각자 독립된 기상을 품은' 일본에 비해 표나게 열등한 것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글을 쓴 그들에게 조선은 야만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표상의 문화지>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일본의 조선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주로 문학작품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 근대의 조선상은 서양 각국이 식민지에 대해 갖고 있는 문화적ㆍ인종적 이미지와 비교할 때 매우 독자적인 특징을 가졌다고 지적한다. 두 나라가 문화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데다 결정적으로 양자를 구분할 신체적 표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영국이 이탈리아를 점령한 모양새이던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하고 거기에 추진력을 붙이기 위해 일본은 적극적인 '경계 짓기'를 모색한다. 어떤 사람은 조선인을 '앵글로색슨족의 호탕한 정신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그들처럼 강건한 신체를 지니고 있기에 실로 노동자로서 세계에서 비할 데 없는 인민'이라고 육체를 강조한다. 흰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망국의 망령, 상중에 있는 농민을 상징하듯 쇠약한 기운이 산과 들에 떠돈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도 있다. 식민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러일전쟁 이후 일본 기업에는 '문명을 이식하고 개발에 힘을 쏟고 싶다면' 조선에 투자하라며, '문명국'의 책임감에 호소하는 권고도 나온다.
저자는 이 같은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표상이 근대 일본의 자기상을 지탱하는 상징적인 사례로 기능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류 붐이 확산되고 있지만 혐한류가 여전히 기세등등한 것은 이 같이 근대 초입에 형성된 일본의 자기상과 조선 인식이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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