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제약 위축… 정부 약값 통제 흔들… 국민 부담 늘어날 듯
2008년 6월26일은 미국 최대제약사 화이자에게 굴욕의 날이었다. 한국의 특허법원은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의 이성체와 염기특허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리피토는 연간 판매액이 12조원, 한국에서도 800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약품. 화이자는 스페인과 캐나다 등에서 열린 비슷한 특허소송에서 승리해 상황을 낙관했지만 한국에선 무릎을 꿇었다. 동아 한미 대웅제약 등 국내제약사들은 곧바로 리피토 제네릭(복제약)을 출시했고, 리피토의 약가는 20% 자동 인하됐다. 복제약들은 이보다도 10% 이상 싼 가격에 판매됐다.
지난 22일 국회를 통과한 한미FTA를 둘러싸고 '괴담'이 돌고 있다. 더 이상 복제약 출시가 어려워져 약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다.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는 게 중론. 복제약 출시가 과거보다 훨씬 까다로워질 것이란 점이다.
제약업계에서 특허란 불변의 진리가 아닌 도전의 대상이다. 약품의 원물질을 제외한 부분은 재판결과에 따라 언제든 특허 유무가 바뀔 수 있다. 특허권자는 다른 특허를 만들어 기간을 연장하려 하고, 도전장을 내민 회사들은 치밀한 준비 끝에 이를 무너뜨리는 식이다. 리피토가 유독 국내 판결에서 패한 것도 수년 전부터 복제약을 준비해온 국내 제약사들의 노력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한미FTA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한미FTA 제 18장 지적재산권 조항에 명시된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재협상 과정에서 3년 간 유예키로 해 2015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허가특허 연계제도에 따르면 특허신약을 보유한 제약사가 같은 성분의 복제약을 출시하려는 회사로부터 허가신청을 통보받으면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전에는 특허 유무를 판가름하기 전에도 복제약 개발이 허용돼 소송 판결이 나오면 바로 복제약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 특허권자가 소송만 제기해도 정부가 복제약 허가절차를 중단해야 한다.
업계에선 허가 절차가 적어도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허권은 그만큼 연장되고 복제약 출시 또한 더뎌지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예상하는 한미FTA에 따른 제약업계의 연간 매출감소액 1,000억원 가운데 대부분은 복제약 출시 차질에 따른 손실이다. 한 국내제약사 임원은 "복제약으로 돈을 벌어 신약개발을 추진해왔고 3~4년 후에는 체질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봤지만 이젠 신약 개발 비용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정부의 약값 결정 권한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미FTA에 따르면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라는 독립적 이의신청기구가 세워지게 된다. 기존에는 해외 제약사의 수입약품 가격이 정부와 협상을 통해 정해졌지만 앞으로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의신청 기구를 통해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약값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관세 철폐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한국은 76.8%에 해당되는 463개 품목 관세가 즉시 철폐되고 122개 제품은 3년 안에 관세가 사라진다. 복지부는 향후 10년간 제약업계 대미 수입이 연평균 1,923만 달러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같은 기간 연평균 334만 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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