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원서 접수마감 결과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서울 동양고와 2년째 지원율이 60% 미만인 용문고의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지정이 취소될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2009년 도입된 지 불과 3년만의 일이다. 시민단체들은 "자율고 정책을 전면 재수정하라"고 촉구했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24일 오히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자율고에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사상 초유의 '지원자 0명' 사태를 빚은 동양고는 서울시교육청에 자율고 지정 취소를 요청하고 일반고로 돌아갈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도 교육청과 협의해 이를 받아들일 방침이다. 그러나 일반고 학생 배정이 당장 다음달 초에 시작돼 동양고는 내년 1학년 신입생을 배정받지 못한다. 동양고의 입학정원에 해당하는 280명은 인근 일반계고가 배정받아야 한다.
교과부는 자율고의 대규모 미달 사태가 벌어진 지난해 도입한 워크아웃제도에 따라, 충원율이 60% 미만인 학교는 워크아웃을 신청해 1년간 정부 재정지원을 받고, 이듬해에도 충원율 60%를 넘기지 못하면 자율고 지정이 취소되도록 했다. 올해 워크아웃으로 지원을 받은 용문고는 아직 추가모집이 남아있지만 현재 지원율이 24%에 불과해 지정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자율고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의 핵심 정책이지만 교육계에선 정책적인 모순이 집약된 실패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일반고의 3배(연간 약 50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받을 수 있고 교과과정의 자율성을 준다는 취지와는 달리, 국고를 쏟아부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자율고를 지원하지 않아 남는 돈은 시설이 뒤처진 공립 일반고에 지원해 수준을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미 올해 용문고가 교과부의 예산지원을 받았고, 그런데도 학생 충원율이 저조해 지정 취소 위기에 몰렸다. 교과부는 한 술 더떠 내년부터는 선발 인원의 20%를 뽑도록 한 사회적 배려대상자가 충원되지 않은 자율고에 대해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일반고가 자율고에서 미달된 정원을 수용해 교육 여건은 더 나빠지는데도 정작 예산은 자율고에 빼앗겨 불이익을 당하는 꼴이 됐다.
고교 체제를 피라미드식으로 서열화하는 데 한 몫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특목고가 1부 리그라면, 2부 리그로 자율고가 자리잡고, 일반계고는 3부 리그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5월 일반고 교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1.8%는 현 정부의 고교다양화정책 추진 이후 일반고 입학생의 성적 수준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서울 지역의 특목고는 20곳, 자율고는 26곳, 일반고는 179곳이다.
또한 자율적인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입시과목 위주의 편성에 불과해 자율고는 사실상 '입시학원'에 불과하다는 점도 정책실패로 평가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장관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입시교육을 탈피해 학생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승현 정책실장은 "이번 사태는 일부 학교의 문제가 아닌 자율고 정책의 근본적인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자율고의 등장으로 인한 일반고의 슬럼화 등을 방치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