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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 협상파 의원들을 격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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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 협상파 의원들을 격려하자

입력
2011.1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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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막장 드라마로 끝나고 말았다. 4년을 끌어 온 한미 FTA는 결국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국회 본회의장에서 부끄럽게 통과되었다. 직권상정, 기습작전, 최루탄 테러, 비공개 강행처리, 의회 쿠데타 등의 소제목이 가득한 신문기사와 하단에 실려 있는 '한미 FTA 비준 동의를 환영한다' 는 광고 문구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1996년 노동법을 비공개 날치기 처리한 이후 15년 만에 창피스런 비공개 본회의 기습처리가 이루어졌고, 전기톱, 해머에 이어 최루탄까지 등장하는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은 숨이 막힌다. 쇄신과 혁신 그리고 통합을 외치며 유권자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던 정치권의 모습이 이럴 수 있는가.

중도의 노선 사라진 시대

더욱 안타까운 일은 여야 협상파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막장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거부했던 협상파 의원들이 설 자리가 이렇게도 좁은 것인가. 그러나 국민들은 ISD(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 조항 등의 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던 국회의원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꼭 기억해야만 한다. 비록 이번 한미 FTA 처리에서도 실패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중간지대를 마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찾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실 날 같은 희망이지만 그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어떻게 중간의 목소리를 키우고, 중간지대를 확대할 수 있을까. 결국 확신과 용기다. 비록 지금은 작은 목소리지만 합리적 주장이 다수의 목소리로 커질 수 있다는 확신과 그 확신을 자신 있게 외칠 용기가 필요하다. 비정상이 정상을 이기고, 극단의 목소리가 합리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상황에서 중도의 노선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고단한 일이다.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일 지도 모른다. 광복 이후 우리의 현대정치사는 중간지대를 불온시해 왔다. 좌익과 우익 사이의 중간은 불그스름한 불온지대였고, 분단과 전쟁, 권위주의 정치를 거쳐 형성된 흑백 갈등의 이분법적 정치문화 속에서 중도는 환영 받을 수 없는 회색지대였다. 전쟁터에서 중간은 피폭의 대상이고, 독재타도의 목전에서 중도는 변절일 수밖에 없다. 3선 개헌과 유신헌법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고, 국회의 단상을 점거해야 했다. 국민들도 끄덕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우리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경험하면서 서서히 변해왔다. 아직 목소리는 작지만 다양한 이익을 표출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이미 중간지대로 진입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극단의 강경한 주장을 펼치는 정치권은 이러한 변화를 외면하고, 당면한 정치적 이익과 정치적 동원을 위해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중도의 대안을 회피하고 있어 안타깝다. 냉철하게 우리사회의 여론 추이를 살펴보면 일반 국민들의 견해는 정상 분포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반해 정당과 국회에서 대변되는 목소리는 양극으로 치우쳐 있다. 이렇게 정치권과 유권자의 간극이 커질수록 정치파행의 수준은 높아진다. 정당이 갈지(之)자로 걷고 국회가 광풍 속을 표류하면서, 유권자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타협과 대화 상시 작동해야

제 3세계 국가의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치현상의 패턴은 매우 비슷하다. 강경파가 주도하는 조직과 사회는 결국 민주화에 성공하지 못한다. 강경파의 주장이 온건파의 목소리를 누르고 단기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강경파 자신들의 몰락은 물론 그들이 주도했던 조직과 사회에 치명적 폐해를 끼치게 된다.

민주사회는 다수의 중간 목소리가 주도하는 사회다. 민주정치의 공고화는 타협과 대화가 상시로 작동하는 중간지대를 기반으로 한다. 한미 FTA 과정에서 보여준 협상파 정치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승리는 당신들의 것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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