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치유의 공간 DMZ 형상화… 영국 참전용사 위로해줄 생각"
서점만 가도 'GARDEN'(정원)이 적힌 책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영국은 정원의 나라로 유명하다. 작은 집 뒤편에도 정원이 있고 은퇴 후 정원을 가꾸며 사는 일이 영국인의 소망이다. 그들에게 정원은 일상이자 휴식이다.
매년 5월 영국에서 세계 최고의 정원ㆍ원예 박람회가 열린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1827년부터 시작해 180여 년 이어온 이 '첼시 플라워쇼'는 왕실의 공식행사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해 각국 유명 인사가 찾아오며 행사가 열리는 5일 동안 17만 명이 다녀간다. 가든 디자이너들에겐 영광의 무대로 통한다.
첼시 플라워쇼 사상 처음으로 올해 수상자 명단에 한국인의 이름이 올랐다. 환경미술가 겸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황지해(35)씨는 '해우소 가는 길'이라는 작품으로 최고상(아티즌 가든 부문)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내년 첼시 플라워쇼의 쇼 가든 부문 출전권이 주어졌다는 낭보도 최근 날아들어왔다.
출전권을 위해 세 차례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작품은 비무장지대(DMZ)를 테마로 한 '고요한 시간'. 아티즌 가든 부문보다 10배 큰 220㎡(약 67평) 규모로 꾸미는 쇼 가든 부문은 첼시 플라워쇼의 백미다. 특히 황씨의 '고요한 시간'이 자리잡는 곳은 행사장 심장부에 있는 삼각 지대. 세 면이 모두 관객에게 노출되는 까다로운 위치다.
"다큐멘터리식 정원이 될 겁니다. 정원 한 바퀴를 돌면 DMZ의 스토리를 읽을 수 있게 하려고 해요. 넓적한 대전차 지뢰와 로켓 지뢰도 정원 속으로 끌어왔어요. 전쟁의 잔재와 같은 이것들을 식물 속에 감춰두고 상흔을 은유하는 거죠. 메모리얼 체어(추모 의자)도 만들어 참전 용사를 기억하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전작인 '해우소 가는 길'은 '화장실'이라는 소재로 처음 심사위원들을 당황케 했다. 그러나 한국 전통 화장실의 비움의 철학과 생명 순환의 의미를 돌과 나무, 수조, 옹기, 꽃 등으로 드러내 결국 찬사가 쏟아졌다. 작품을 본 한 프랑스인은 작가에게 "당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며 눈물까지 보였다고 한다. 정원이 담아내는 정신성을 새삼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해우소 가는 길'은 그린피스에 기증됐다.
"정원은 총체적인 예술이에요. 도자기부터 화장실, 이념적 메시지나 우주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지요. 나라마다 정원의 형태와 정신도 다르죠. 영국 정원은 바로크풍의 틀 안에서 변주되는데, 요즘은 초지 정원이 인기에요. 일본은 잘 알려졌듯 물방울 떨어지는 각도까지 계산할 정도로 다듬고, 중국은 바위도 부숴서 재배치할 정도로 가공하길 좋아하죠. 그에 반해 한국 정원의 미덕은 자연스러움에 있어요. 주변 경관을 끌어들여 활용하는 '차경기법'을 전통적으로 써왔는데, 그 안에서 우러나는 정신성을 어떻게 담아내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고요한 시간'에서는 DMZ를 자연스럽게 재현하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담는다. 건드리면 소리가 나도록 돌멩이를 넣어 걸어둔 철책선의 깡통에 황씨는 이산가족의 편지와 돌멩이를 담아 그리움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포로 교환 장소였던 초소 앞 다리는 자유의 다리가 되고, 철모에는 야생화가 담기며, 서로 감시하는 8.5m 높이의 경계 초소는 생태계의 감시탑이자 평화를 호소하는 장소가 된다.
"올해 런던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많이 만났어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전의 영국인 전사자가 1,000명이 넘어요. 부상자는 더 많은데, 20대였던 그들이 이제는 80대 할아버지가 됐지요. DMZ는 인간 사회와 단절되고 접근이 금지된 공간이지만 전쟁의 상처가 자연의 생명력으로 치유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곳이 주는 감동이 특별해서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생태계 보고로 알려진 DMZ 부근 군사분계선 접경지역인 강원 양구 두타연에 다녀온 황씨는 거기서 본 풍경을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자연의 화원은 처음 봤어요. 원시림의 녹색 숲은 투명하고 웅장했고요, 깊은 숲 속의 다래나무 터널은 신비롭기까지 했어요. 며느리가 미워서 이름 지었다는 가시투성이의 며느리밑씻개, 장식성이 돋보이는 오이풀, 이색적인 절굿대, 군인들이 간첩꽃이라고 부르는 마타리, 천연 비아그라로 불리는 야관문까지 이런 풀과 꽃을 '고요한 시간'에 400여 종쯤 심을 거에요."
어려움도 적지 않다. 토종식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 비행기로 공수해 현지 적응시키는 일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후원사를 찾는 일이 급하다. "내년에 영국에서는 첼시 플라워쇼를 시작으로 6월에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인 '다이아몬드 주빌리', 7월에 런던 올림픽이 열린다"며 황 작가는 정부와 기업의 관심을 호소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 정원 가꾸고는 싶은데… 그럼 실내 정원 만들어봐요
가든 디자이너 황지해씨가 마당이 없어도 실내에서 정원을 가꿀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 오죽과 신호대 스크린
검은 대나무인 오죽과 작은 대나무라 불리는 신호대를 한 줄로 세워 작은 병풍을 만들어 본다. 오죽과 신호대 모두 직선으로 뻗은 대가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준다. 특히 신호대의 잎은 일반 대나무보다 3배 정도 커서 늘 녹색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습도 조절도 탁월해 실버 세대에 좋다.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소리 역시 마음에 안정을 준다.
● 돌과 선인장
마사토 위에 선인장과 돌덩이 몇 개를 올려두면 이색적인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정원을 가꾸려면 부지런해야 하지만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선인장이나 다육식물은 손쉽게 키울 수 있는 식물이다. 특히 선인장의 한 종류인 귀면각은 물 없이 한 달을 버티고 죽은 것처럼 보여도 물만 주면 살아난다. 또 기둥처럼 생겨서 하나만 심어놔도 완성도가 있다. 바쁘고 게으른 싱글에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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