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민주화 성지 타흐리르 광장에 '키파야'(충분하니 물러나라는 뜻의 아랍어)의 외침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2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난 민심이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종식시켰다면 이번 시위는 민간 정권이양에 미온적인 군부를 겨냥하고 있다. BBC방송은 군부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18일 시작된 시위가 엿새째 이어지며 사상자와 부상자가 속출해 제2의 혁명이 일 조짐이라고 23일 보도했다.
군 최고위원회(SCAF)는 군경과 시위대가 24일 휴전에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시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반 군부 시위는 타흐리르 광장뿐 아니라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운하도시 수에즈 등 이집트 전역으로 확산된 상태다.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로 사망자가 40명에 육박하고 부상자는 2,000명을 넘어섰다.
타흐리르 광장 인근 도로와 빈 건물에 마련된 임시 진료소는 진압 경찰의 고무탄 등에 맞은 부상자들로 붐비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군경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10세 어린이가 총에 맞아 위독한 상태고 9개월 된 아이는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후세인 탄타위 SCAF 사령관이 예정보다 앞당겨 내년 6월 이전 대선을 치르겠다고 했지만, 시위대는 군부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SCAF는 24일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수십 명이 사망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시위대의 퇴진 요구는 거부했다. 이번 사태가 '민주화 시위 발발→강경 진압→유혈 사태 발생→시위 확산' 등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을 때와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어 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러나 "경제에 대한 우려와 사회 안정화 욕구가 커지면서 시위를 바라보는 이집트인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시민은 "시위대는 직업이 없거나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로 실질적인 목표도 없고 방법도 폭력적"이라며 "군도 없고 국가도 없다면 혼란밖에 더 오겠는가"라며 시위대를 비판했다. 일단 선거를 치른 뒤 군부의 태도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FT는 이런 회의적인 반응 탓에 시위대가 군부를 몰아내는 데 지지를 얻지 못하거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만수르 엘 에사위 내무장관은 정정 불안을 이유로 28일로 예정된 하원 선거를 연기할 것을 제안했지만, SCAF는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24일 재확인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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