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입시에서 또 무더기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지원자가 한 명도 없어 내년 신입생이 없는 상황에 처한 학교까지 나왔다. 학생들의 수요, 학교의 준비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23일 서울시교육청과 사설입시교육업체인 하늘교육에 따르면 26개 서울시 자율고의 2012학년도 신입생 원서접수 마감 결과, 평균 경쟁률은 1.26대 1로 집계됐다. 2010년학도 평균 경쟁률 2.41대 1, 2011학년도 1.44대1에 비해 떨어진 수치다.
이 중 11개 학교에서 지원자 수가 모집정원에 미달됐다. 경쟁률이 2대 1을 넘은 학교는 4곳에 불과하다. 2년 연속 미달된 용문고는 455명 모집에 109명만 지원했고, 역시 연속 미달된 동양고는 아예 지원자가 없었다. 미달 학교 학생들은 치열한 내신 경쟁, 등록금 수입 부족으로 인한 부실 학교재정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동양고는 35명이 지원서를 냈으나 일부 지원자들이 전체 지원 규모가 너무 적은 것을 알고 회수했고, 학교 측도 나머지 지원자들에 대해서 취소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이제형 동양고 교감은 "1학년이 없는 상태로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교육청 의견 등을 수렴해 향후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자가 모집정원의 60%에 미달한 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에 워크아웃(일반고 전환) 신청을 할 수 있다.
이번 미달 사태는 예견된 실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이사는 "서울 중3학생 11만명 중 자율고에 지원 가능한 상위 50% 학생 전체 숫자는 5만 6,000명이다. 외국어고, 과학고 지원자와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빼고 나머지 중 절반이 자율고에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모집정원이 1만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애초에 경쟁률이 2대 1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현실을 지적했다.
학부모들도 '무늬만 자율고'에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장은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학생 선발 방식이 남다르다거나 참신한 교육과정이 준비된 것도 아닌 일반고가 대거 자율고로 전환한 것이어서 등록금만 3배 비싼 학교에 보낼 이유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1월 전국 자율고 30곳의 교사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자율고 미달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내신만 불리해서'(60%),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지 못해서' (16.7%), '대입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비가 비싸기 때문에' (6.7%) 등의 답변이 나왔다.
어려운 사정은 지방 자율고도 마찬가지다. 대구지역 자율고는 4곳 중 2곳이 미달이었고, 23일 기준 지방 자율고 평균 경쟁률은 1.2대 1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무리하게 자율고 확대를 추진해온 교과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교과부는 2012년까지 자율고 100곳을 지정하겠다는 목표로 불과 2년 만에 전국에 51개 고교의 자율고 전환을 유도했다. 매년 등록금 수입의 5%에 달하는 재단전입금을 확보할 만한 사립고가 많지 않아 첫 해 신청 학교가 39곳에 그쳤을 정도로 반응이 미지근했는데도, 미달 학교들에게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 계획'등만 제출받은 뒤 조건부 지정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이달 초 자율고가 특색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자율고가 학생 입학전형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노골적으로 특혜를 시사했지만, 이조차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셈이 됐다.
교육시민단체 연합인 행복세상을여는교육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귀족학교 자율고를 만들어 과도한 학비, 일반고 학생의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해놓고 특혜를 보장해 공교육을 훼손하는 정책을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당국과 정치권이 교육수요자의 요구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며 "일반고를 포함한 고교 전반의 교육내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교정책 로드맵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