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내사 범위를 축소하는 총리실의 23일 조정안 발표에 경찰은 격분했다. 일부 경찰은 "수사 부서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경찰 내부 인터넷 토론방은 성토성 방문이 이어지면서 한때 접속 장애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고려대에서 열린 조찬강연에서 "지구상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찰은 대한민국 경찰뿐"이라며 총리실 조정안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연간 8조원의 세금을 사용하는 (경찰) 조직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수사권 제한 같은)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청장은 또 이날 오전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총리실의 조정안을 보면 내사 부문이 지금보다 개악됐다"고 거친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일선 경찰들은 더욱 격앙된 분위기였다. 수사ㆍ형사 경찰 사이에서는 '수사 경과(수사 주특기) 반납 운동'이 벌어질 만큼 반발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경남 진해경찰서의 한 경감급 경찰관은 "검경 수사권 강제조정에 반발해 수사 경과 해제 희망원을 제출했다"고 경찰 내부망에 글을 남겼다. "16년 경찰 생활 중 10년을 수사 경과에서 보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 경찰관은 "위험하고 힘들지만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천직이라 생각했던 수사 경찰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이런 곳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은 의욕도 없어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 적었다.
일부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정부, 여당을 단죄해 경찰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낙선 운동을 벌이자"는 제안까지 내놨다. 한 경찰 관계자는 "10만 경찰이 한 뜻으로 뭉치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라며 "내부망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부 여당, 검찰, 총리실의 야합 소식을 공유하고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리실 조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을 놓고 "검찰이 비리수사 등으로 대통령 측근과 청와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총리실이나 청와대가 검찰의 요구를 외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 경찰관은 "검경 합의가 쉬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총리실이나 청와대가 중재에 나설 경우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대통령 측근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경찰 수뇌부에 대한 경계심도 표출됐다. 한 경찰관은 "조 청장 등 수뇌부 일부가 19대 총선 출마를 저울질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들이 총선 공천권과 수사권 양보를 맞바꾼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