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깊고 넓을 수밖에 없다. 무역영토가 확장돼 우리 주력 제품의 수출이 늘어나는 등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농ㆍ어민과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 등 사회적 약자에게 불어 닥칠 타격은 예측 불허다. 실제 국내 농ㆍ축ㆍ수산업은 향후 15년간 약 20조원, 제약산업은 10년간 10조원 등 각 분야에서 천문학적인 피해 발생이 예상된다는 게 경제연구기관의 분석이다. 한미 FTA가 우리 산업 지형도를 바꿔 놓을 '경제 쓰나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관건은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키우는 한편, 개방의 파고 속에 낙오가 불가피한 농ㆍ어민 등 소외계층의 피해 보전과 자활기반 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책을 면밀히 검토, 신속히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책을 조속히 실행하고,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과 동시에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피해 분야 지원의 경우 공장 설비비 지원, 저리 융자 등 하드웨어에 대한 자금 지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금 지원만으로는 해당 분야의 경쟁력을 더 떨어뜨린다"며 "농업을 예로 들면 농업 전공 학생들에게 현장실습 대가로 등록금을 유예해줘 농업 인재를 육성하는 것처럼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농ㆍ어민과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련 규제 완화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질적인 가격 담합, 로비 등 우리 경제의 불공정 시장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랐다. 이창우 한국FTA연구원장은 "기업들이 공정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소비자들의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 대출 창구지도, 주유소 기름값 억제 등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관여하고 반대급부로 특혜를 주는 등의 불투명한 관행도 개선 과제로 떠올랐다. 김형주 연구위원은 "FTA 환경에서는 이런 관행이 투자자ㆍ국가소송제(ISD)를 통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의 인식 변화를 주문했다.
한미 FTA를 주변국 투자 유치 및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삼자는 제안도 나왔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되면 관세 인하는 기본이거니와 특히 중국 기업은 중국산 저가제품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용민 무역연구원 실장은 "일본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겨냥해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엔고에 따른 가격인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이런 장점을 내세워 주변국의 투자를 유치하면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 "기업들은 낮아지는 관세만큼 미국 판매가격을 낮춰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인지, 연구개발 투자로 제품의 질을 높일 것인지, 현지 홍보와 유통망 강화에 쓸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최용민 실장), "미국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에 대한 제도적, 정치적 지원이 필요하다"(이창우 원장) 등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