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 교복시절 향수가 물씬… "그래도 영화만은 최신"
'인디아나존스' '첩혈쌍웅' '서편제'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는지. 백이면 백 그곳은 간판을 내렸다. 이름이 남아있다 해도 주인과 분위기는 예전과 딴판이다. 중앙, 대지, 국도, 명보, 국제, 아카데미, 스카라, 허리우드, 아세아, 단성사, 경보, 화양, 명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도, 지하상가 우표상도, 연탄구이 껍데기집도 살아남아 빈티지 대접을 받는데 그 시절 영화관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스마트한 세상이 도래하기 오래 전 종적을 감춘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 단관극장. 이제 전국에 딱 하나, 경기 동두천에 남아 있다. 차르르 차르르르. 스산한 변두리의 공기 속에서 동광극장의 구식 영사기는 돌고 있었다.
스크린이 하나뿐인 영화관은 몇 군데 있다. 하지만 그런 영화관은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탈바꿈했거나 다른 빌딩의 일부로 세들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알 두꺼운 안경을 낀 '아트' 마니아들이나 찾아가는 별세계의 느낌. 거기서 문어포를 뜯어 가며 때로는 암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던 단관극장의 향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버스 회수권을 닮은 관람표에 침을 묻혀 숫자를 흐릿하게 만든 다음 같은 영화를 두 번씩 보고 나왔던, 자글거리는 화면 탓에 극장을 나설 때면 안압이 오르곤 했던 극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요새 애들이 어디 이런 데 오나. 그나마 오던 애들도 전철 개통되고부터는 서울에 있는 CGV, 롯데시네마로 가버려요. 내가 이 극장에서 언제까지 영화를 걸 수 있을지…."
동광극장은 동두천 구시가지 중앙시장 가까이 있다. 미군기지 이전 결정, 경원선 복선화, 신시가지 건설이 겹치며 구시가지 상권은 급격히 위축됐다. 극장 대표 고재선(55)씨는 "1986년 내가 이 극장을 살 때 땅값이 평당 500만원이었는데 지금 350만원에 내놔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숨길 수 없는, 속도를 더해가는 퇴락의 자국이 극장 안팎에 쌓여 있었다. 생계를 걱정하는 곳에서 향수를 찾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모르지 않지만, 그 퇴락의 풍경이 기억의 저편을 자극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래. 예전엔 잘 나갔지요. 영화 보려고 길게 줄을 섰으니까. '가께모찌'라고 아나? 의정부에서 틀고 난 필름 프린트를 여기까지 총알처럼 날라주는 오토바이꾼을 그렇게 불렀어요. 프린트가 흔치 않아서 하나 갖고 여기저기 돌려야 했거든. 당시엔 20대 극장주라고 내가 동두천 문화 인사로 대접 받기도 했어요."
영화관 입구는 네온등으로 제법 화려하다. 하지만 조명시설 곳곳엔 '다마'가 나가있고 바람에 떨어져 지나는 사람을 덮칠까 봐 철거해버렸다는 대형 입간판의 빈 자리는 휑하다. 매표소 겸 사무실 겸 매점으로 사용하는 긴 탁자가 입구에 맞닿았고, 역전 다방 분위기를 풍기는 대기실이 스무 평 남짓. 지난 여름 물난리에 들이친 빗물의 흔적이 대기실 벽에 흐린 얼룩으로 남아 있다. 사장 겸 매표원인 고씨는 얘기를 나누면서 눈을 CCTV로 연결된 영사실에 두고 있었다. 그는 "봉급 제대로 못 챙겨주는 게 미안해" 20여년 함께 일한 영사기사를 2년 전 다른 도시의 멀티플렉스로 떠나 보냈다.
"아유, 제발 '추억의 극장' 그렇게 좀 쓰지 마요. 이 극장이 좋다고 멀리서 찾아오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영화는 안 보고 극장만 둘러보고 떠나지. 극장은 찻집이랑 달라서 잠깐 머물렀다 가는 걸로는 수익이 안 나잖아요. 의정부역에 있는 멀티플렉스 팝콘을 들고 오는 손님도 있어요. 거기 표가 매진됐던 거지.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아요."
고씨는 서울 토박이다. 부친이 동두천의 문화극장을 인수한 스무 살 무렵부터 극장 운영에 참여하다가 서른넷 되던 해 동광극장을 인수해 독립했다. 10년 가량은 잘 됐다. 교복 입은 학생, 동네 상인, 외박 나온 군인, 기지촌 양색시들로 매진 사례를 빚을 때도 있었다. 1993년 가을엔 큰 돈을 들여 극장을 개수했다. 그 해 9월 30일자 동두천신문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동광극장이 개봉관 시설보다 뛰어나 명실상부하게 동두천이 자랑할 만한 문화공간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돌비시스템의 장엄함이 돋보이며 보통 이상으로 경사진 관람석은 아이맥스영화관을 연상시킨다.'
살짝 상영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금요일 해거름, 일부러 손님이 몰릴 것 같은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상영관 안은 한산했다. 스크린에 비치는 건 김하늘과 장근석이 찧고 까부는 '너는 펫'의 한 장면. 어둑한 객석으로 고개를 돌리니 283석 가운데 두 자리에만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군인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청년과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하는 일을 물어보기가 난감한 중년 사내. 7,000원씩 1만 4,000원. 이날 3회차의 상영 수익이다. 전기요금도 안 되는 액수다. 고씨는 "뜻있는 데서 극장을 인수해서 영화 박물관이나 촬영시설로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밖에서 들여온 음식을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도 있고, 보다가 중간에 た暠?다음 회차에 다시 들어가도 눈치 주지 않는다. 도심의 멀티플렉스와 달리 동광극장은 손님이 있건 없건 한 번 건 영화는 최소 3주는 상영한다. 부박한 도시의 인심뿐 아니라 삭막한 영화 배급 시스템에서도 벗어나 있는 셈. 고씨의 휴대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극장으로 걸려온 전화의 착신전환. 상영시간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고씨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곧 수심 어린 표정에 묻혔다. 마지막 단관극장의 풍경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동두천=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멀티플렉스 붐에 밀려 유서 깊은 단관극장들 문 닫거나 예술영화관으로
단관극장은 1998년 강변CGV 개관에서부터 시작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붐으로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극장 시설의 차별화도 원인이지만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서 영화와 쇼핑, 외식을 결합한 여가 활동으로 영화 관람 문화가 바뀐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2008년 부산 국도극장, 2010년 서울 드림시네마(구 화양극장) 폐관으로 주요 도시의 단관극장은 모두 문을 닫았다.
서울에서 단관극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낙원상가에 남아 있는 허리우드극장이다. 현재 이곳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서울아트시네마와 추억의 영화를 상영하는 허리우드클래식 실버영화관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실버영화관은 55세 이상 2,000원, 55세 미만 5,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현재 '모감보(1953)'와 '오싱(1985)'을 상영하고 있다. (02)3642-4232.
광주 충장로에 위치한 광주극장에는 1930년대 영화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 건물은 1968년 새로 지은 것이지만 일제 시대 검열관 공간인 임검석, 50년도 더 된 영사기 등을 전시한 2층 전시실 등이 있다. 지금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바뀌어 하루 5차례 상영한다. (062)224-5858.
대구 동성로에 있는 동성아트홀도 단관극장 시절의 흔적이 비교적 많은 곳이다. 본래 푸른극장이라는 이름을 단 이곳을 1992년 영화 간판 화가 배사흠씨가 인수해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좁은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면 작고 아늑한 옛 극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053)425-2845.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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