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루탄 얘기가 자주 등장하더니 드디어 '최루탄 국회'가 대미(?)를 장식했다. FTA로 시끄러운 의사당에 민노당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니 오랜만에 접하는 그 위력이 옛 기억을 살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지난 14일 경남 마산시 중앙부두 바닷가에 지정문화재(경남 제277호) 표지판이 제막됐다. 불타는 눈동자 한가운데 최루탄이 박혀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섰다. <4월 혁명 발원지>라는 제목 아래 "1960년…, 마산 3ㆍ15의거 시위 중 행방불명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 최루탄 국회 바로 전날 경찰청은 "경찰이 보유한 CS최루액 전량을 내년에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 CS최루가루를 탄(彈)으로 만들어 사용한 것은 해방 이후였으나 공식 등장은 1960년 3ㆍ15 부정선거 규탄시위 때. 총기 발사 최루탄(SY-44)과 투척용 사과탄(KM-25)은 6월 항쟁이 벌어진 1987년 한 해 67만3,588발을 사용한 것을 정점으로 줄어들었다. 1998년부터 CS액(液)을 물대포에 섞기 시작했고, 2009년 8월 쌍용차 평택공장 농성 때까지 사용됐다. 현재는 덜 해롭다는 스위스제 파바(PAVA)액과 가스 분사용 천연재료를 사용한다.
■ 최루탄 소식은 월가 점령 시위가 한창인 미국에서 잦았다. 지난달 25일 서부 오클랜드에서 이라크전 퇴역 해병대원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17일엔 북서부 시애틀에서 80대 할머니가 최루액을 뒤집어 쓴 채 연행되는 모습이 공개됐다. 18일엔 캘리포니아주립대 캠퍼스에서 연좌농성 중이던 대학생 10여명의 머리와 얼굴에 근접분사기(칙칙이)를 발사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시장들이 서둘러 공개 사과까지 했으나 뉴욕에서 시작된 시위가 서부에서 재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만큼 감정적으로도 얄미운 존재다.
■ 최루탄이 낯설게 된 이유는 시민들 사이에 비폭력 시위가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불법폭력으로 규정한 시위가 2001년 215건에서 134건(2003), 77건(2005), 64건(2007), 45건(2009), 지난해 33건으로 크게 줄었다. 최루탄 논란이 일자 미국 경찰이 "노인이라고 더 해롭지 않다"고 말하고, 한국 경찰이 "45리터 이상 마셔야만 죽는데 뭘"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경찰은 '최루 진압'이 좋은 모양이다.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들이 최루탄의 피해를 잘 체감했을 테니 김선동 의원의 만용으로 얻는 것도 있겠다 싶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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