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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미 FTA, 정치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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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미 FTA, 정치의 실패

입력
2011.11.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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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통곡하며 국민을 향해 큰절을 올렸고, 한나라당 의원 몇몇은 박수를 쳤다. 이같은 상황은 얼마 지나지 않아 4월 총선에서 완전히 역전됐다. 무리한 탄핵 발의에 대한 반발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절대 승자가 됐다. 결과적으로 탄핵 정국 유도가 노 전 대통령의 절묘한 정치적 계산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정치인에게 행위의 명시적 목표와는 별개로 선거에서 이기는데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따지는 셈법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서 만큼은 이같은 계산법은 틀렸다. 아니 틀린 것이어야 한다. 먼저, 더 이상 협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나 국익을 생각해 여당 단독으로라도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틀렸다. 한미FTA는 국민의 삶에 전반적이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에겐 광활한 시장이, 누군가에겐 생존을 어렵게 할 정글이 열리게 되는 양면적 효과가 있고, 그렇기에 찬반 양론이 팽팽할 수밖에 없다. 국가적 차원의 득실은 달라진 시장 환경에서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역동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을 향해 설명하고 설득하고 수용에 이르게 하는, 협의와 합의의 과정에 시간을 들였어야 했다. 또 경제환경이 달라지면서 영향을 받을 국민의 삶의 질과 복지 보장은 국회와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날치기 외에 어떠한 정치력도 동원하지 못하는 여당을 어떻게 믿고 미래를 맡길지 막막하기만 하다.

야당에 대해서는 더 절망적이다. 날치기 비준에 일조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민주당은 내심 제2의 촛불 정국을 기대하며 반기지 않기를 바란다. 현 정부의 재협상으로 내용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전 정권에서 한미FTA를 주도하거나 지지했던 이들이 눈 하나 깜짝 않고 절대반대로 입장을 바꾼 데 대해 질릴 대로 질린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이념적 성향이 어느 쪽이든간에 합리적 토론과 상식을 믿는 이들일수록 그렇다. 최근 '안철수 바람'을 겪으면서도 구태를 반복한 민주당은 부동층을 끌어들이기는커녕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을 깊게 만들었다.

한미FTA가 우리 경제에 가져올 미래는 시간이 걸려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출발은 실패다. 민주적 합의 절차는 실종되고 낯익은 날치기와 폭력이 재연됐다. 사실 여야에 끝까지 협상을 위해 노력했던 의원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의회정치는 작동하지 않았고, 최루탄 연기 자욱한 후진성을 노출했으니 우리 정치의 총체적 실패다.

후진적인 정치가 그저 웃음거리에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나, 경제위기가 정치에서 비롯되거나 증폭되는 사례를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서 목격하고 있다. 올들어 신용평가기관들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채권시장에서 증폭된 것은 모두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 또는 정책에 엇박자를 낸 정권 수뇌부의 문제가 도화선이 됐다.

시장개방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철저한 내수 분야인 정치의 경쟁력은 너무나 뒤처져 있다. 다른 것은 다 젖혀두고 정작 개방해서 선진화해야 할 것은 정치시장이었다. 지금 정치인들은 그래봐야 표가 갈 데가 따로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정치시장은 열려 있다. 신선한 정치를 기대하는 수요는 점점 쌓여가고 있으니.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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