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들이 구조조정, 퇴출 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기업에 들이닥쳤던 일이 이제는 학교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봤던 정년이 훌쩍 넘으신 모 대학 노교수의 대담 내용이 떠올랐다. 고질적인 교수사회의 병폐 중 자기 학교의 이익이나 개인 연구에만 몰두하거나 혹은 줄 세우기, 자리보존 등 눈앞의 사리사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옛 봉건적 할거주의나 다름없다며 진정한 학문을 하고 학생들을 위한다면 서로의 장벽을 낮추고 소통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학교, 교수, 학생 사이에 존중과 순수함의 사제 관계, 몸담고 있던 모교의 든든한 울타리와 낭만은 옛 이야기가 되어간다. 각자 이해타산을 앞세워 상대에 대한 신뢰감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신뢰감 상실로 인한 문제가 대학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여론에 너무 쉽게 동화되고 눈에 띄는 이슈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각 분야에 목소리 높여 요구만 하고 있다. 어느새 대다수 사람들이 나랏일이든 개인의 사생활이든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일 없이 남의 잘잘못을 따지고 공격하는 평가 위원이 되어있다. 누가 책임자이고 학생이고 정치가이고 교사인지 뒤죽박죽 된 모양새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문가가 전문가로서 소신껏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모든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잘 하고 있는지 각성할 필요를 느낀다.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불평불만에 요구만 하고 있을 것인가? 전체를 바꾸고자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나 자신의 자발적인 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현재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물건이 용도에 따라 제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 하고, 교사라면 학생들의 인성과 지성, 나아가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책임진 사람이라면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힘든 사회의 단면일 수도 있지만 기성 세대들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은 혈기 왕성한 에너지로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개혁의 지름길이라고 본다.
외부로 향하고 있는 시각을 내면으로 방향을 돌려 나를 바라보라. 내가 후회 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남의 이목, 체면, 대세의 흐름 때문에 주체성을 잃고 분별없는 판단으로 나도 모르게 남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자. 남 탓만 하고 해주기만을 바라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나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바로 세우고 완성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성과 실천, 나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통해 수십 번 무너지고 세우는 일을 반복하며 걸어야 할 멀고도 고된 길이 될 것이다. 훗날 만족감과 허무함 중 어느 것이 인생의 결과가 되어 나를 기다릴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나는 누구인가? 진짜 내가 원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 삶에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송재광 이화여대 음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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