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007 작전- 황우여 "지금 처리" 긴급발표… 의장은 질서유지권 발동
허 찔린 민주- 지도부 출판기념회 앉아있다 허겁지겁 본회의장 뛰어가
최루가스 진정 뒤 속전속결- 의장석 에워싼 야당 40여명, 점거 등 실력으로 저지못해
22일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기습 처리한 과정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가 개의되기 2,3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지도부를 제외한 여당 의원 대부분이 본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완벽하게 '허'를 찔렸고, 결과적으로 여당의 강행 처리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사상 초유의 돌발 행동을 한 탓에 국회는 또 다시 폭력으로 얼룩졌다.
한나라당의 본회의장 '기습' 진입
이날 오후 2시 한나라당은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새해 예산 관련 정책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출석을 독려하긴 했지만, FTA 처리 계획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의총이 한 시간 정도 진행된 뒤 황우여 원내대표가 3시쯤 발언대에 서서 "긴급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황 원내대표는 "더 이상 야당과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며 "지금 바로 FTA를 처리하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가자"고 독려했다. 한나라당은 의총 시작 직전 의총장을 국회 1층 회의실에서 2층 본회의장 맞은편 예결위 회의장으로 바꿨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곧바로 국회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FTA 직권상정을 위한 심사기일(오후 4시)을 지정했다. 국회 출입문은 대부분 봉쇄됐고, 경찰 병력이 국회 주변 곳곳에 대거 배치됐다. 그 사이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130여명은 일제히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민주당엔 초비상이 걸렸다. 당시 본회의장 주변에 야당 의원과 보좌관이 거의 없었다.
3시10분쯤부터 일부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는 각각 국회 의원회관과 의정기념관에서 열린 강창일 의원과 김성곤 의원의 출판 기념회장에 앉아 있다가 상황 보고를 받고 허겁지겁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37분 만에 끝난 FTA 표결
오후 3시 50분쯤 본회의 의결 정족수가 채워졌고, FTA 표결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긴장감에 휩싸여 있던 본회의장은 4시 8분 최악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민노당 김선동 의원이 가방에 숨겨 본회의장에 반입한 최루탄을 의장석 주변에서 터뜨렸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 수십 명이 눈물을 흘리거나 기침을 하면서 본회의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부 의원들은 호흡곤란을 호소해 의료진이 긴급 투입됐다. 최루가스는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까지 퍼질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최루가스가 어느 정도 사라진 4시 24분, 박 의장으로부터 본회의 사회권을 넘겨 받은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고, 일단 본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할지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비공개 진행안'이 가결되자 정 부의장은 이어 FTA 비준안 본회의 상정을 선언했다. 야당 의원 40여명은 의장석을 에워싸고 "날치기 하지마!", "깡패 조폭이냐!" 등의 소리를 질렀지만 적극적으로 실력 저지를 하지는 못했다.
비준안 제안 설명을 하려던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저지 당하자 곧바로 표결이 시작됐다. FTA 비준안이 가결된 것은 표결이 시작된 지 4분 만인 4시 28분. 이어 FTA 이행 법안 14개도 속전속결로 통과됐고, 5시 1분 정 의장은 본회의 산회를 선언했다. 야당 관계자들이 본회의장 진입을 위해 본청 유리창 한 장을 깼을 뿐, 이날 국회가 입은 재산 피해는 거의 없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회의 직후 비공개 의총을 하기 위해 예결위 회의장으로 이동했고, 손 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남아 연좌 농성을 시작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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