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7,400㎞.'
한국인 최초로 '단독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윤태근(50)씨가 항해한거리다. 출발할 때 40대였으나 50대가 돼서야 돌아왔다. 반백의 머리는 모두 하얗게 샜다. 무려 605일간의 항해 동안 변한 건 겉모습만이 아닐 터.
그가 자신의 단독 요트 세계일주 체험을 담은 책 <꿈의 돛을 펼쳐라> 를 냈다. 2009년 10월 부산항을 출발해 올해 6월 다시 부산항에 회귀하기까지의 생생한 기록이다. 꿈의>
윤씨는 원래 소방관이었다. 부산 해운대 소방서에서 1987년부터 7년 간 근무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이후 덤프트럭 운전, 음식점 경영 등 여러 일에 손을 대다 2003년 우연히 요트의 매력에 빠졌다.
"부산 출신이라 어렸을 때부터 '바다'에 대한 동경이 있었거든요. 요트만큼 언제 어디든지 자기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여행 수단이 없어요. 요트라면 '세계일주'란 오랜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요트를 몰고 우리나라까지 운송해 주는 요트 딜리버리, 요트 수입·판매·운송 사업, 국내요트·보트 시험관 등 요트 관련 일들에 손을 댔다. 미국세일링협회(ASA)에서 요트 항해술 강사 자격증을 따 세계일주를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난관도 적지 않았다. "너무 위험하다"며 아내가 말렸다. 아직 아버지가 필요한 아들 셋도 눈앞에 밟혔다. 항해 비용은 열심히 모아도 한계가 있었다. 기업들도 세계일주 중 사고가 나면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독이 된다는 이유로 후원을 꺼렸다. 그래도 돛을 펼치겠다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산악인들한테 '왜 산을 오르냐'고 물으면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저 역시 그냥 요트로 바다를 건너가 보고 싶었어요. 간절한 꿈은 사실 이유가 없더라고요."
이렇게 7년여의 준비 끝에 드디어 2009년 10월 11일 부산항을 떠났다. 자신의 마흔 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37피트(11.3m) 크기의 요트엔 '두려움을 모르는'이란 뜻의 '인트레피드(intrepid)'란 이름을 붙였다. 겁이 많은 자신의 성격과는 반대로 두려움을 모르는 강직한 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바다는 예상대로 녹록치 않았다. 파도는 거칠었다. 3~6노트 속도의 조류와 싸우다 배가 떠밀려가는 건 예사였다. 예멘 해안 경비대가 수상한 배로 오해해 윤씨의 요트를 추격하거나 이스라엘 해군이 그의 요트 주변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아찔했던 경험도 있었다. 암초에 배가 올라탔던 위험천만한 순간도 잊지 못한다. 적막한 밤 홀로 망망대해에 떠 있을 땐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다섯 달 전인 6월, 숱한 고비 끝에 인트레피드호는 무사히 부산항에 닻을 내렸다. 2년 여간 동남아, 인도양, 소말리아 해역, 홍해, 지중해, 대서양, 남아메리카, 비글해협, 태평양 등을 건너며 28개국의 항구에 정박한 뒤였다. 파도는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인트레피드 호가 사람들 걸음걸이와 비슷한 속도로 항해를 했어요. 그런데 결국 지구 한 바퀴를 돌았잖아요. 계속 나아가면 시간은 늦더라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무기한으로 남극이나 알래스카 같은 극한의 땅을 항해하는 게 그의 남은 꿈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