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제 두 나라는 사실상 관세 없는 개방체제로 들어가게 됐다. 혜택을 보는 업종도 있지만, 반대로 상당한 타격을 입고 힘겨운 개방파고를 넘어가야 할 업종도 있다.
한미 FTA의 최대 수혜주로 꼽혀 온 자동차분야는 기대 효과가 상당하다. 2015년까지는 미국 측 관세 2.5%가 유지돼 당장 급격한 수출ㆍ판매 증대 효과를 누리기 어렵겠지만, 양측 전 차종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는 2016년부터는 가격경쟁력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업계 모임인 자동차공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1,500만대 규모의 거대한 미국 시장을 선점해 국산차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수출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업계는 대미 자동차 수출의 36%를 차지하는 부품의 관세(2.5~4%)가 내년부터 없어지는 데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협회는 "수출 증가에 따라 3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5,000여 중소부품기업의 경영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만큼 수입되는 미국산 차도 늘어나게 된다. 국내 수입되는 미국산차 값은 대략 12%정도 인하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산차'는 제조지역이 미국이란 뜻이므로, 일본 도요타가 미국에서 만든 차를 들여와도 역시 FTA혜택을 보게 된다. 이미 상당수 일본업체들은 '메이드 인 USA'차량으로 국내시장 공략을 시작한 상태다.
제약업계는 산업기반 붕괴까지 걱정하는 상황. 지금까지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 가운데 예멘에 이어 우리나라가 두 번째로 받아들인 '허가-특허 연계제도' 때문이다.
이 조항이 발효되면 그간 다국적제약사의 신약을 바탕으로 복제약이나 개량신약을 만들어 왔던 국내 제약사들은 특허침해소송이 제기되는 즉시 곧바로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국내 제약사들은 손발이 묶이게 되고, 소비자들 역시 비싼 오리지널 약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 추산으로도 비준안 발효 이후 국내 복제의약품 생산은 10년간 연평균 686억~1,197억원 감소하고, 시장 위축에 따른 소득 감소 규모는 457억~797억원에 달한다.
다만 보건의료서비스 시장은 포괄적으로 개방하지 않고 현행 규제 수준을 유지키로 해 당장은 건강보험 체계가 위협받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식문화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관세 장벽이 허물어지는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 등 농산물과 쇠고기 등 육류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몰려올 것이기 때문. 과일의 경우 관세가 즉시 철폐되는 체리와 레몬, 건포도, 아몬드 등이 소비 패턴을 변화시킬 전망이다. 현재 이마트에서 판매되는 체리는 500g에 1만원 정도인데, 관세(24%)가 철폐되면 8,000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상대적으로 칠레와 유럽산에 밀려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도 10∼15% 가격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방송시장은 중소 채널사용사업자(PP)와 독립제작사를 중심으로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 비준안은 PP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를 49%까지로 제한했지만, 국내법인을 통한 간접투자의 경우 보도채널과 종합편성, 홈쇼핑을 제외한 모든 PP에 100%까지 허용했다. 3년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지만 자체 제작 비중이 크지 않은 중소PP들이 월트디즈니나 타임워너 등 미국의 글로벌 미디어들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방송콘텐츠 진흥 정책이 기반시설 마련에 집중돼 있어 몇몇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를 제외한 대다수 PP는 해외사업자들에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통신시장은 한미 FTA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국내법과 동일하게 49%로 제한됐고, 유선과 무선 통신시장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KT와 SK텔레콤은 간접투자 완화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주력 수출분야인 전자ㆍ정보통신(IT) 분야도 수혜업종으로 꼽힌다. 핵심부품소재, 방송통신장비 등의 관세가 철폐되면서 수급처가 미국으로 다변화할 경우 제조업계의 원가 경쟁력 제고와 함께 대일 무역적자 개선 가능성도 높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미국에 컬러TV와 백색가전 등을 관세철폐 중장기 유예품목으로 양보했지만, 국내 취약부문인 전자의료기기 분야 역시 중장기 유예를 끌어내 전체적으로 불리할 게 없는 협상이었다"고 평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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