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직권상정을 통해 강행 처리됐다. 한나라당은 어제 기습적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간 뒤 자유선진당 및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희망미래연대와 함께 본회의를 열어 비준동의안과 한미FTA 14개 이행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허를 찔린 민주당과 민노당의 일부 의원들이 뒤늦게 달려와 강력 항의했으나 질서유지권과 경호권이 발동된 상태에서 이뤄진 표결을 막지 못했다. 표결에 앞서 민노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려 본회의장을 수라장으로 만든 초유의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의 정치 수준이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그 동안 우리는 수 차례 여야간 협상을 통한 합의 처리를 촉구했다. 다수 국민의 여망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끝내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기습 강행처리와 최루탄 소동 등의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정국 경색 등 후유증은 불 보듯 뻔하다.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당은 전면적인 무효투쟁을 선언하고 향후 국회 일정을 중단키로 해 새해 예산안 처리부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준안 강행처리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ㆍ여당은 적극적으로 정국 수습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약속한 대로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이 한미FTA 발효 후 3개월 내에 착수되도록 해야 한다. 미 정부도 긍정적 입장을 밝힌 만큼 재협상 개시 자체는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민주당 등이 제기해온 ISD의 독소적 요소를 제거하는 실질적 결과를 도출해야 의미가 있다. 양국간 심각한 국익갈등과 반미감정을 야기할 화근을 남겨둬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FTA 발효로 가시화할 피해부분 대책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여야 협상을 통해 대책을 마련한다고는 했지만 미흡한 게 많아 대폭 보완이 필요하다. 농어업ㆍ축산업 분야의 피해보전 직불제 개선, 농사용 전기료 적용 확대 등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원 특별법 제정, 무역조정 지원 기업의 요건 완화, 대형 유통시설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만으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대책이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취약 분야의 피해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보전해줄 수 있는지에 한미FTA의 성패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이미 FTA강국이라고 하지만 한미FTA 발효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국면이다. 일부에서 기대하듯 우리 경제가 한층 도약할 발판이 될 수 있지만 자칫 심한 경쟁에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위기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를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지혜롭게 적응해 나가야 한다. 여기엔 여야 정파와 이념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