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사 어때요."
"가을에는 삼(蔘)이 좀 팔렸는데, 요즘은 김장철이라 좀 안 팔리고 그래요…." 시인이 쑥스럽게 말한다. '죽은 고기를 씹고/ 똥물 내리는 물소리나 들으며/ 풀 냄새라곤 담배 냄새나 맡'으며 떠돌던 도시를 떠나 강화도에서 가난하게 혼자 살며 시를 써온 함민복(49)씨는 지난 봄 결혼을 했다. 동갑내기 부인은 몇 해 전 시인이 김포에서 시 창작을 가르칠 때 강의를 듣던 제자다. 늦깎이 신혼 부부는 기르는 개의 이름을 따서 생삼과 인삼 가공품을 파는 가게 '길상이네'도 차렸다.
외롭고 궁핍하게 사는 모습이 그대로 시 같던, 그래서 늦은 결혼이 문단 전체의 경사가 됐던 함 시인이 22일 시 에세이 <절하고 싶다> (사문난적 발행)와 시화집 <꽃봇대> (대상 발행)를 나란히 냈다. 시 77편에 짤막한 감상이 붙어 있는 <절하고 싶다> 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한국일보에 '시로 여는 아침'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절하고> 꽃봇대> 절하고>
연재 당시 함 시인은 의미가 명징해서 독자들이 읽기 어렵지 않은 시, 아름다운 표현보다 사람의 삶이 얹혀있는 시, 계절이나 시대 흐름에 맞춰 독자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시를 골라 소개했다. 송찬호의 '민들레 꽃씨'에서 시작하는 시들은 백석, 박목월, 정현종, 이성복, 최승호 등 근현대 한국 시인과 고려 문인 이규보, 중국의 두보, 영국 시인 존 단, 이탈리아 작가 프레모 레비 등 시공간을 넘나든다.
시인은 이날 전화 인터뷰에서 책 제목에 대해 "함성호 시인이 추천해준 고은의 시 '저녁 무렵'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며 "내가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하는 문장이 '흙을 향해 허리 굽히는 게 모든 일의 시작인/ 농부들'(시 '논 속의 산그림자')인데 이 문장과 '저녁 무렵'의 구절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꽃봇대> 는 함 시인의 최근 시집 <말랑말랑한 힘> (2006년)이후 발표한 신작시를 모아 황중환 화백의 그림을 얹은 시화집이다. 함 시인은 "주위를 둘러보면 전봇대에 걸친 전깃줄로 연결되지 않은 집과 건물이 없다"며 "문명의 상징이기도 한 전깃줄 대신 집들과 건물들이 우리 마음속에서만이라도 꽃줄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꽃봇대'로 정해봤다"고 했다. 말랑말랑한> 꽃봇대>
담긴 66편 가운데 3장에 실린 '다리의 사랑' 연작시들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서로의 다리가 되어주며/ 함께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니/ 사랑은 몇 층인가'('다리의 사랑ㆍ4' 전문). 책 서문에서 '나무다리길에 앉아 강화도와 김포를 잇는 곡선이 아름다운 초지대교를 바라다보며 '다리의 사랑' 연작을 썼다'고 소개한 함 시인은 마치 요즈음 심경이라도 고백하듯 '이 연작 글을 쓰며 나는 조금 행복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해 '시로 여는 아침' 연재를 시작하며 "슬슬 시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그는 요즘 인삼 장사하면서 부지런히 시를 쓰고 있다. "내년에 다섯 번째 시집을 묶어 여름쯤 내고, 그때쯤 동시집도 낼 겁니다." 새 시집에 어떤 사랑 노래가 담길지 벌써 궁금해진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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