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하정웅(72ㆍ사진)씨의 이번 방한 길은 각별했다. 22일 개막해 내년 1월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과 영친왕ㆍ왕비의 일생'전은 그가 2008년 기증한 사진 등 680여점의 자료를 추려 선보이는 자리다. 앞서 18일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포럼 '다시 최승희를 본다'에 초청돼 가졌던 회고와 증언은 멸절됐던 역사를 생생히 재현하는 시간이었다.
'최승희 콜렉터'로서 해방기 무용가 최승희와 관련된 사진 등 자료 100여점을 기증한 그는 이날 포럼에서 신여성 최승희를 어둠의 시기에 한국인들에게 긍지를 심어준 사람이라 강조했다. "문예진흥원이었던 곳에서 최승희를 기억하게 돼 행복하다"며 운을 뗀 그는 "1986년 월북 예술인 공개 이전에는 철저히 함구됐던 최승희를 일본 소학교 2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승희의 공연을 보고 온 선생님의 말씀이 어찌나 생생한지 마치 공연을 본 듯 했죠. 키 크고 모던한 차림의 최승희는 당시 일본인들에게 경이였어요."
아직도 일각에서 최승희 죽이기의 망령이 떠도는 현실을 그는 개탄했다. "최승희가 친일파라 하는데 나는 몹시 불쾌합니다. 일본서 태어난 만큼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최승희가 조선 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못 본 체 하는지 따졌다.
조국이 잊고 있는 최승희는 그에게 현실이었다. 그는 재일한국인예술인회장 정병훈 등이 소장하고 있던 슬라이드 350여점 등 자료를 먼저 일본의 미술관에서 공개했다. 1997년, 최승희란 존재가 언론을 통해 한국에 비로소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
하씨는 "예를 들어 최승희의 보살춤 사진은 조각도 못 따라 할 완벽한 작품"이라고 했다. 일본 내 주요 미술관에서 '하정웅 컬렉션'으로 전시됐던 그 사진들은 당장 재일교포들에게 명예와 긍지를 심어주는 계기였다. "창씨개명과 강제노동의 불행한 역사에서 태어났지만, 도리어 일인들이 (최승희를)경탄의 대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걸 보고 성장한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그는 말하고 있었다.
"보살춤은 실크로드의 윈캉 석굴을 보고 최승희가 구상한 것이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미학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부조와 더 흡사해요. 최승희의 보살춤은 동양의 비너스, 바로 그거예요." 최승희를 상징하는 말, '동양의 비너스'에는 한 교포 고미술품 수집ㆍ연구가의 피땀 어린 노고가 짙게 스며 있다. 영상 감상회, 강연 등으로 이어진 이날 행사는 "역사의 폭력" 앞에 사라진 것들의 의미를 깨우쳤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사진 한용훈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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