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홍모(28)씨는 3년째 수험생 신세다. 대학 입학 후 진로문제로 고민하다 한 차례 전과를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각종 시험을 전전하고 있다. 그는 "학창 시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했고 전공도 점수에 맞춰 선택했다"며 "서른을 앞둔 이 나이에 장래희망을 두고 사춘기 애들처럼 고민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청소년기에 진로교육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평생을 허송세월하며 낭비할 수 있다. 무턱대고 공부만 시키기보다는 자녀의 적성과 흥미를 파악해 조기에 맞춤형 진로교육을 실천해보는 게 좋다. 지난 17일부터 사흘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2011 꿈의학교, 새로운 직업축제' 현장을 찾아 진로 교육의 해법을 들여다봤다.
나만의 진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자
"사육사를 하고 싶다고? 그럼 동현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지?" 안화균 압구정고 진로상담 교사의 질문에 서동현(자양고 2)군은 머리만 긁적일 뿐 묵묵부답이다. "왜 꿈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는 안 교사의 채근에 서군의 얼굴이 벌개졌다. 안 교사는 무안해하는 서군을 위해 '진로 포트폴리오'를 제안했다.
첫째, 사육사에 관한 정보 수집하기. 사육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과 자격, 관련 학과, 구체적으로 하는 일, 평균 임금, 근무환경 등등 항목을 나눠서 알아봐야 한다. 안 교사는 "상담 오는 친구들 대부분이 막연한 동경이나 주위의 추천대로 희망직업을 말하기 때문에 물어보면 정작 아는 게 없다"며 "진로 관련 사이트와 서적, 인터넷 검색 등을 활용해 객관적으로 정보를 탐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직접 체험해보기. 동물 조련으로 유명한 신구대 직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집에서라도 직접 개나 고양이를 길러보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셋째, 다양한 커리어 쌓기. 동물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동아리를 만들거나 안내견 봉사활동 등을 시도해볼 수 있다. 안 교사는 "진로교육에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자기주도학습이 대세"라며 "동물을 키워드로 잡고 다양하게 활동영역을 깊이 파고들어가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적성 찾기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
그나마 서군처럼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파악하고 있다면 다행인 편.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꿈과 장래희망은 사어(死語)가 되어가는 게 현실이다.
윤여복 서울시교육청 미래인재교육과 장학사는 "'어느 직업이 좋다더라, 어느 학과가 취업이 잘 된다더라' 하는 남의 말을 듣지 말고 학생들 스스로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내 마음의 말을 듣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 미리 적성검사를 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청소년워크넷이나 커리어넷 등 온라인 사이트를 활용해 진로 검사, 심리 검사를 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유형을 추린 후, 학교 성적이나 부모님의 조언을 참고해 교집합을 찾아나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선호가 달라지는 만큼 1년에 한번씩 검사를 해 보면 좋다. 홍기출 한강미디어고 진로상담교사는 "일선 학교에서도 상급학교로의 진학지도에만 골몰하다 보니 진로지도는 등한시하지만 진로교육이 배제되면 아이들은 평생 자기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며 "초등학교는 진로인식, 중학교는 진로탐색, 고등학교는 진로선택에 초점을 맞춰 진로지도가 단계별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미래 직업도 다양
이날 행사에선 새로운 직업군도 소개됐다. 직업멘토관에 참석한 샵마스터 김주형씨는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진땀을 뺐다. "샵마스터는 매장관리뿐 아니라 손님들에게 패션 정보를 제공해줘야 하기 때문에 트렌드에 민감해야 해요. 자격증은 있어야 하지만 대학을 꼭 나와야 하는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직이니까 적극적인 성격이면 좋겠죠." 김지선(공항고 2)양은 "학교에서도 진로과목이 있긴 하지만 동영상 틀어놓고 자습시키는 게 전부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직업멘토들 덕분에 생생한 정보를 얻었다"며 뿌듯해 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신나라(압구정고 1)양은 희망제작소에서 그린디자이너로 활약하는 김진수씨와 상담을 했다. 신양은 "쉽게 버리는 물건이 아닌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게 그린디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늘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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