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군부의 권력 이양을 요구하는 시민과 이들을 막으려는 군경이 충돌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이 있는 수도 카이로를 비롯해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으로 시위가 확산되면서 28일로 예정된 총선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AFP통신은 이집트 전역에서 벌어진 사흘간의 시위로 모두 35명이 사망했다고 시체 안치소 관계자들을 인용해 21일 보도했다. 부상자도 1,75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집트 보건부 장관은 이에 앞서 이날 22명의 사망자를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시위는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축출 이후 발생한 최장기 시위이기도 하다.
시위대가 20일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군부 퇴진을 요구하자 군과 경찰은 고무총탄과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진압했다. 시위대는 21일에도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집결해 군부의 완전퇴진을 요구했다. 목격자들은 군경 수백명이 이날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시위대를 쫓아내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으며 시위대의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부상자들은 거리에 있는 이동 진료소로 옮겨졌다.
시위대의 요구는 권력의 민간 이양이다. 이들은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가 권력을 넘기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군사위원회의 완전 퇴진을 요구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군부는 6개월 안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속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군부가 총선 이후 대통령 선거일 등 정치 일정을 공표하지 않고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장하는 신헌법 기본원칙을 내놓으면서 촉발됐다. 새 헌법이 제정되더라도 민간정부가 군 예산 등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면서 권력의 상당 부분을 유지하려는 태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비롯한 야권은 선거 운동을 중단하고 군부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마드 아부 가지 문화장관은 유혈 사태에 책임을 지고 21일 사임했으며 일부 총선 출마 예정자는 군부의 유혈 진압에 반발해 선거 활동을 중단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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