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키스가 또 화제가 됐다. 베네통 광고가 연출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망측한 입맞춤이 뉴스가 된 게 며칠 전이다. 이번에는 인도네시아 발리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 줄리아 질라드 호주 총리가 뺨에 입을 맞춘 뒤 립스틱 자국을 닦아 주는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그저 재미있거나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이다. 그러나 삐딱한 언론과 인터넷 댓글은 이것도 타박이다. 먼저 볼키스(Cheek kiss)를 요구한 건 결례라는 둥, 쉽게 짐작할 상황과 실제 의전 관행은 아랑곳 없이 비아냥댄다. 마치 조선시대, 바깥 세상에 무지한 논쟁을 리메이크한 것 같다.
유치한 'MB 볼키스' 논란
MB가 오죽 미우면 저럴까 싶다. 하와이 APEC(아ㆍ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EAS 참석에 이은 필리핀 방문에 "안에서 인기가 바닥이니 바깥을 떠돈다"고 비웃는다. 본인이야 이래저래 민심을 잃은 처지라 억울해도 도리 없다. 그저 내 탓이요, 하는 게 낫다.
그러나 명색이 제법 번지레한 언론이 공연한 트집, 유치한 논란의 꼬투리를 마련하는 짓을 일삼는 건 한심하다. MB 탓에 괴롭다는 이들을 기껍게 하는 걸 보람으로 여길 수 있으나, 늘 말하듯 보수 찌라시와 진보 삐라 신문은 다를 게 없다. 이기심을 감춘 헛된 사명감에 겨워 맹목적 갈등을 부추기는 건 바른 언론이 아니다. 사회가 천박한 가십과 예능에 매달릴수록, 세상 돌아가는 사리와 맥락을 부지런히 헤아릴 일이다.
MB가'해외를 떠돈'지난 열흘 동안,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주요국 정상 모두가 태평양 양쪽을 바삐 오갔다. 하와이 APEC 정상회의, 발리 아세안(ASEAN)+3(한ㆍ중ㆍ일) 정상회의 및 EAS와 함께 개별 정상회담과 국빈 방문이 잇따랐다. 이어 새로운 태평양 시대가 시작됐다거나, 미ㆍ중 패권 다툼이 본격화했다는 자못 거창한 분석과 경고가 쏟아졌다. 이걸 제대로 가늠하기도 벅찬 판국에'볼키스'따위로 저급한 시비를 하는 건 부지런하기는커녕 게으르다.
그나마 진지한 듯한 논평도 미ㆍ중의'대결과 봉쇄'를 주제로 삼는다. 이를테면 미국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일본이 가입할 뜻을 밝히자, 곧장 '중국을 배제한 경제동맹'을 입에 올린다. 2006년 출범한 TPP 가입국이 싱가포르 뉴질랜드 브루나이 칠레 4개국뿐이고, 미국 호주 베트남 말레이시아가 지루한 가입 협상을 하고 있는 사실은 짐짓 간과한다.
미국은 중국이 이 지역 경제협력에서 앞선 상황을 만회하려 한다. 아세안 APEC EAS TPP는 각기 미ㆍ중의 지위와 영향력이 다르지만, 갈수록 가입국이 겹치고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게다가 개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이런 터에 집단적 경제봉쇄를 논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강대국 경쟁은 늘 패권 다툼으로 비친다. 미ㆍ중 군사력 경쟁을 되뇌는 것은 이런 인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는 논리는 은연중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우위를 지역국가들에 일깨운다. 중국의 경제적 도약은 막을 수 없지만, 잠재적 안보 위협은 충분히 견제할 힘을 앞세워 태평양의 중심세력으로 굳게 버티려는 전략이다. 그 궁극 목표는 경제적 국익이다.
복잡한 '경쟁과 협력' 적응해야
남중국해 분쟁 간섭과 호주 다윈의 해병대 주둔 등도 경쟁과 협력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포석이다. 냉전시대 같은 무한대결로 치닫는 듯한 정치적 수사에 현혹되는 건 어리석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 직후, 달콤한'힐러리의 키스'를 중국에 보냈다. 중국의 도약을 막지 않는 대신 미국 경제의 기력 회복을 돕는 타협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구체적 조건과 이익을 치열하게 다툰다. 중동 수렁과 유럽 재정위기에서 발을 뺀 미국은 새삼 태평양 국가를 선언, 본격'경제 전쟁'을 예고했다. 이런 때, 한미 FTA를 놓고 을사늑약이나 논하는 건 구한말 때처럼 몽매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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