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1일 우울한 창당 14주년을 맞았다. 현재 존재하는 우리나라 정당 가운데 최장수 정당이지만 축하를 받을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2004년 탄핵 후폭풍 이후 최대 위기’‘노환(老患)에 시달리는 정당’ 같은 우려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에 “당을 초고강도로 개혁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했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당의 생일을 자축하는 대신 당의 쇄신과 변혁을 주문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참패하고 정권을 다시 내줄 수밖에 없다”는 여권의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인덕대학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을 만나 “지금은 정책 쇄신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 정치 쇄신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의 10ㆍ26 재보선 참패 이후 ‘선(先) 정책 혁신’을 강조해 온 박 전 대표가 처음으로 정치 쇄신을 역설한 것이어서 그 의미에 관심이 모아졌다. 박 전 대표가 최근 ‘신당 창당설’을 부인했기 때문에 ‘정치 쇄신’은 일단 여권 전체의 인적 쇄신과 당 조직 및 운영 방식의 개혁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는 ‘당명 개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이름과 겉모양을 바꾸는 것도 어떤 때에는 필요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 속마음을 확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 14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12월 정기국회가 끝날 무렵부터 민의와 시대 요구에 따른 당 개편에 곧바로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당내 쇄신 연찬회를 열어 당이 어떻게 바뀌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국민의 재신임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의견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 측은 “현재로선 신당 창당이나 세력 간 이합집산 등 야권의 방식을 따라가기 보다는 한나라당 중심의 개혁을 하겠다는 게 홍 대표의 구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는 “신당 창당이나 당명 개정 등 고강도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15대 총선 직전의 당명 개정 사례를 참고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은 95년 12월 ‘총선 위기 타개책’으로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대대적 공천 물갈이를 단행한 끝에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선전했다. 이어 신한국당이 97년 대선을 앞두고 (꼬마)민주당과 통합해 만든 신당이 현재의 한나라당이다. 여권 관계자는 “신당을 만들면 반(反) 한나라당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한나라당 당원인 이명박 대통령과 자연스럽게 절연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개혁파 중진 의원은 “당이 갱생하느냐 풍비박산 나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데 화장만 조금 바꾸는 식의 쇄신으론 어림 없다”며 “박근혜 전 대표와 홍준표 대표 등이 총선 공천권 등 작은 기득권에 안주한다면 모두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일부에서는 원로 의원 상당수와 함께 당 지도부와 대선주자들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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