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창업할 당시에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한다니 무슨 짓이냐'며 '돌아이' 취급 당했는데, 수많은 아이디어로 도전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보니 맥박이 다시 빨라집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1박2일 일정으로 중소기업 살리기 버스투어를 시작했다. 그는 21일 첫 번째 일정인 충북대 창업보육센터 간담회에서 김재언 보육센터장, 주요 벤처기업 대표, 학생들과 만나 자신의 젊은 시절 실패담을 털어놨다.
그는 "잘 모르시겠지만 내가 창업 1세대"라며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1년 다니다 무역회사를 창업했지만 재무 사고로 문을 닫아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 "지금 여러분 세대는 취업이 잘됐던 우리 세대를 보면 부러워하겠지만, 내 세대엔 창업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역회사밖에 없었다"며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해진 현재가 청년 사업가,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정부는 내년 청년창업을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정책과 제도를 정비, 개혁해 나갈 것"이라며 "작더라도 성공사례가 많이 나와 젊은이들이 용기를 갖고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의 1박2일 버스투어는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경제 불안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우리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을 살펴보고 지원 방안을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첫날 청주, 전주, 광주를 거쳐 이튿날 부산, 대구 등의 산업현장을 방문해 이동거리만도 1,000㎞가 넘는다.
김 위원장은 투어에 앞서 기자들에게 "일자리 측면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며 "특히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등 중소기업 운영의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직접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투어에 기대가 아주 크고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번 투어에는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조준희 기업은행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등 정책금융기관장과 시중은행 중기대출 담당 부행장 5명 등 창업과 중소기업에 실제 도움이 될 주요 금융권 인사들이 대거 동행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현장에서는 그간 쌓인 불만이 둑 무너지듯 터져 나왔다. 특히 정책금융 지원이 아이디어나 기술력 등 발전 가능성보다 매출, 임직원 수 등 외형이나 기존 실적을 더 따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의료산업 분야의 소프트웨어 제작업체 허그정보기술의 진석형 대표는 "외국계 투자자들은 기술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 금융기관들은 설립연도나 매출에 더 관심이 많다"며 "이는 신생업체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고 성토했다.
정부정책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참두릅영농조합 정진근 대표는 "농업은 땅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인데, 투기가 우려된다며 토지 구입 자금을 빌려주지 않는다"면서 "창업자가 많은 농업 부문은 이런 제약 탓에 지원 금액이 거의 없다"고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농업이 정부지원에서 배제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중소기업청과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진흥공사 등과 상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전주 LCD 장비부품 및 풍력발전 날개 생산업체 케이엠(KM)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회사 박성배 대표는 "정부 지원자금도 담보가 없으면 쓸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고, 김위원장은 "우수기업의 금융 활로가 막힘이 없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광주 평동산업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소기업 운영자들은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한도 확대 및 은행 대출금리 인하, 은행 담보율의 현실화 등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보증, 대출, 창업 등 중소기업 정책과 지원을 총괄ㆍ전담할 수 있는 통합 사이트가 필요하다"며 "이를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은행창구에서 중소기업 대출에 소극적인 이유는 대출이 부실화했을 때 은행원이 책임지는 구조 때문"이라며 "정당한 절차와 합리적인 심사를 거친 대출이 부실화한 경우엔 대출 직원의 책임을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듣던 한 참석자는 "높은 사람들이 직접 지방산업단지를 찾아 지역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전국을 이틀 만에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벌써 해결됐을 것"이라며 정부의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청주ㆍ전주ㆍ광주=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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