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은 때로 백 마디 말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포탄의 불기둥이 지척에서 치솟고 있는 가운데 K-9자주포에 당당하게 버티고 선 병사를 포착한 이 사진이 그랬다. 지난해 11월 23일 북한군의 포격 이후 연평도의 불타고 찢겨진 암울한 모습만 전해지고 있을 때, 이틀이 지난 25일 공개된 이 사진 한 장은 우리 해병대의 활약상을 최초로 확인시켜 주었다.
이 사진을 찍은 이는 연평부대 정훈장교 이성홍(28) 대위다. 북한군의 포격 직전 부대원들의 포 사격훈련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이 대위는 6문의 K-9자주포 중 제4포의 마지막 탄이 불발돼 훈련이 중단되자 잠시 쉬면서 병사들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제3포 옆에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았다. 이 대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면서 셔터를 눌렀다. 불꽃은 금세 사그라지는가 하더니 다른 2개 포대에 잇달아 포탄이 떨어졌다. 하지만 제대로 사진을 찍기에는 이미 한 발씩 늦었다. 마지막 네번째 포탄이 뒤쪽의 제1포에 떨어졌고 크게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지난 21일 만난 이 대위는 “앵글을 맞추거나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이 장면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무방비로 적의 공격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어디선가 “빨리 피해”라는 고함소리를 듣고 정신없이 대피호 안으로 뛰어들었다.
‘뭔가 건졌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꾸물거릴 여유가 없었다. 부대 밖 상황은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위는 사진파일을 정훈병과 양승호(24) 하사의 컴퓨터에 옮겨놓고 민가 피해 지원에 나섰다. 때문에 이 사진은 당초 양 하사가 촬영한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양 하사의 경위 보고에 따라 이 대위가 찍은 사진임이 밝혀졌고, 그는 지난해 말 이 사진으로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 대위는 “이 사진이 전 언론매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실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네가 해병대를 살렸다”는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병사들은 이 사진을 보며 힘을 냈다. 군의 대처에 비판적이던 국민들도 해병대의 용맹함을 기꺼이 인정했다.
그는 “한 장의 사진이 지닌 가치가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면서도 “목숨 걸고 싸운 장병들을 생각하면 나는 별로 한 게 없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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