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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학자금 대출' 죄인이 된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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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학자금 대출' 죄인이 된 부모

입력
2011.11.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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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죄를 진 것 같아 하루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가슴만 앓았어요. 다음날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갚아버리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방법이 없네요."

대학생 형제를 둔 53세 가장이라고 밝힌 그는 학자금대출이 취업을 가로막는 기막힌 현실(한국일보 11월 14일자 1ㆍ3면)에 분노하기보다 오히려 죄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을 "큰애는 사립대, 작은애는 국립대에 입학해 군대를 다녀오고 내년엔 졸업연도라 나름대로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가장으로 소개했다. 작은애 등록금은 어렵게 저축한 돈으로 해결했지만, 큰애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큰애만 3학기 정도 학자금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하고 어찌어찌 버티어왔는데, (기사를 보고) 큰애한테 죽을 죄를 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가난한 아비로서의 죗값을 덜기 위해 금융회사와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느라 종일 뛰어다녔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죽했으면 생면부지의 기자에게 "무례하게" "실례를 무릅쓰고" 이메일(아이디 '가을남')을 보냈을까. 그의 둔박한 질문들엔 슬픈 가장의 단면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아는 선에서 답을 해 주자 바로 메일이 왔다. "일말의 불안감은 있지만 열심히 생활에 임하겠습니다. 많은 젊은이들과 힘없는 가장들이 절망에 휩싸이지 않도록 계속 감시해주세요."

사실 학자금대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죽어라 '알바'(올해 최저임금 시간당 4,320원)를 뛰어도 등록금 대기가 어렵고, 이런저런 조건에 정부지원 학자금대출은 언감생심이다. 결국 대부업체를 찾았다가 살인적인 고금리(연 20~40%)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반값등록금이 논의되고 10%대 학자금대출 상품도 대안으로 등장했지만, 결국 최선을 다해 혹은 취업 후에 빚을 갚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업들이 입사지원자의 과거 빚을 채용 잣대로 암암리에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을남처럼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마저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다행히 보도를 접한 박병석(민주당) 의원이 최근 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추궁했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적절한 지적"이라며 "연체정보 제공에 관한 사항을 다시 점검하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후 금융권만이라도 학자금대출이 취업에 제약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금융감독원도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책보다 더 중요한 건 기업들의 인식 변화다. 은행권 신입사원 최종 발표를 기다리는 한 취업준비생은 "(학자금대출) 연체한 걸 다 갚았는데도 떨어질까요"라고 메일을 보내왔다. 합격발표 날짜가 지났지만 아직 그에게서 답이 없다.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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