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한 슈퍼마켓 앞. 주인 이모(73)씨는 김장용 쪽파를 씻고 있었다. 북한군의 포탄이 빗발쳤던 1년 전 그날처럼 연평도는 지금도 어김없이 김장철인 것이다. "지난해 김장은 어떻게 됐느냐" 묻자 이씨는 "다 해놓곤 맛도 못 봤다. 양념 무치다 폭격 맞은 사람도 있다"면서 북쪽 산을 가리키며 "저기가 그냥 불바다였는데, 뭘"이라고 덧붙였다.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는 연평도지만 매끼 밥상에 오르는 붉은색 김치만 봐도 그날의 불길이 떠오르는 사람은 이씨만이 아니다. 네 살 된 딸을 둔 연평면 주민 김모(38)씨는 "당시 포격 소리에 소스라쳤던 아이는 이제 파도 소리만 들어도 겁을 낸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바다를 그렇게 좋아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마을 풍경에는 상처와 복구의 흔적이 뒤섞여 있었다. 곳곳에 폭격 당시 사진이 붙은 표지판이 서 있었다. 23일 2,000여명의 참석자에게 복구 상황을 공개하는 '연평도 포격 1주기 추모 및 화합행사'를 앞두고 포크레인 등 중장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포격으로 전파된 집 32채 중 13채가 새로 지어졌고 1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7개의 대피소 신축 공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최철영 연평면사무소 산업팀장은 "서해5도특별지원법에 따라 약 334억원 규모의 지원ㆍ재건사업이 이뤄지면서 연평도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 1년을 앞두고 떠들썩한 상황을 지켜보는 주민들의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포격 상태를 그대로 보존해 안보교육관으로 활용하겠다며 파손된 집 3채를 400㎡ 규모의 초록색 장막으로 덮어놓은 것을 바라보던 한 주민은 "최근 '안보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며 "연평도 사태 직후 5~6개월 동안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도 싫어 서로 말조심까지 했던 우리들에게는 별로 반갑지 않은 풍경"이라고 씁쓸해 했다. 지난 1년 동안 외부의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린 연평초등학교의 홍주학 교사는 "학생들이 군부대 행사 참석 등 각종 교외 활동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힘들어한다"며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포격 피해 보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피폭주택건축추진위원장인 정창권 연평우체국장은 "군에서는 완파된 집만 새로 지어주는데, 집의 벽과 지붕이 떨어져 나가거나 금이 간 주민들은 겨울 날 걱정에다 보상도 받지 못해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신승원 연평도어민회장은 "폭격 후 배 한 척당 1,200만원에 달하는 어구 30개 대부분이 손실됐고, 외지 어부들은 일하기를 꺼려 선수금이 2배인 1,000만원으로 오르는 등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포격 직후 약 한 달 동안 연평도 주민 500여명의 임시 피난처로 사용됐던 인천 중구 찜질방 인스파월드도 당시 연평도 주민을 수용하다 기존 회원들이 대거 탈퇴하는 바람에 경영난으로 후유증을 겪고 있다.
포격으로 숨진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흉상이 세워진 남부리 평화공원에서는 북한 쪽 해안이 코 앞에 보였다. 해병대원들은 무장한 채 해안을 순찰하는 틈틈이 연평도 포격 1년을 앞두고 방문한 손님들을 맞기 위해 도로 정비까지 하느라 분주했다. 지난 1년 사이 새로 들어선 우리 군의 시설과 북한군의 해안포 진지 신축 공사 현장은, 태연하기만 한 바다와 무심한 듯한 안개를 사이에 두고, 여전히 마주하고 있었다.
연평도=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김현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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