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방청을 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치열한 법정 공방이 흥미진진하지 않던가요? 혹 재판 상황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겠죠. 주머니를 뒤져봅니다. 스마트폰이 있군요. 얼마든지 몰래 녹음이 가능합니다. 발각되면 "몰랐다"고 하면 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큰일날 수 있습니다. 수백만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습니다. 며칠 동안 유치장 신세까지 질 수도 있습니다. 녹음 버튼을 누르기 전 다시 한번 생각하세요.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재판이 끝난 후 재판장 앞에 섰다. 재판장이 휴대폰을 집어들고 "하면 안 되는 것 몰랐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여성은 고개를 숙인 채 얼버무렸다.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왔다는 이 여성은 스마트폰으로 재판 과정을 녹음하려다 법정 경비에게 발각됐다. 재판장은 매우 화가 난 모습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분이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이번에는 경고만 하겠지만, 앞으로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지난 16일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재판에서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녹음을 하다 적발됐다. 재판부는 일벌백계를 선언했다. 현행법상 허락 없이 재판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면 재판부는 최대 20일까지 유치장에 감치시키거나 최대 1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 이 학생은 결국 2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 법정 녹음이나 녹화를 하다 발각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재판부에서는 이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몰랐다"고 발뺌하면 주의나 경고 수준에서 끝냈지만, 이제는 법대로 처분하겠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 달 초에는 볼펜처럼 생긴 첨단 장치로 재판을 녹화하던 방청객에게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기도 했다.
법원 경비들의 눈초리도 점차 매서워졌다.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녹음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휴대폰이 눈에 띄면 방청객에게 바로 치워달라고 하는 등 과민반응을 보일 정도다. 일부는 재판부에 "재판 시작 전에 방청객에게 휴대폰을 책상 위에서 치워달라고 말해달라"거나 "경비의 요청에 따라 맡기라고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반발하는 방청객들도 있다. 경비의 요청에 "어차피 공개 재판인데 녹음하는 게 문제가 되냐"며 말싸움을 벌이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입장은 완강하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녹음이나 녹화를 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편집해 유출할 경우 개인정보 유출 등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재판 당사자의 내밀하고 민감한 이야기를 외부로 전할 경우 인권침해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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