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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적과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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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적과의 키스

입력
2011.11.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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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입맞춤, 키스는 언뜻 원초적 본능에 따른 행위다. 여러 감정과 뜻을 담은 키스가 순수한 모성의 입맞춤에서 비롯됐다는 추정이 이런 인식을 뒷받침한다. 불(火)과 조리를 모르던 원시인들이 조류나 일부 포유류처럼 먹이를 씹어 입을 맞대고 어린 자식에 먹인 것이 사랑의 표현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성을 벗어난 남녀 사이의 키스는 인종과 문화에 따라 '출현' 시기가 다르다. 연구에 따라 엇갈리지만, 고대 그리스와 인도에서는 관습으로 통용된 반면 이집트에는 없었다. 호주와 타히티 원주민,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인들도 원래 키스를 몰랐다고 한다.

■ 성경에 '성스러운 입맞춤' 이 등장하듯, 키스는 초기 기독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상징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서양 사회에서 먼저 일상화한 바탕일 것이다. 다만 중세까지 상류층의 고상한 행위, 이를테면 존경 복종 우호 환영을 나타내는 의전(儀典) 성격이 짙었다. 여기서 적대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상대에 경외심과 평화 의지를 표현하는 귀족계급 기사들의 키스 관행이 나왔다. 그러나 기품과 명예를 담은 '적과의 키스'는 전쟁 양상이 우두머리 대결에서 집단전투 형태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 이탈리아 패션그룹 베네통의 '적과의 키스' 광고 캠페인이 말썽이 됐다. 통념을 깨는 도발적 광고로 익숙한 베네통은 적대하거나 비우호적인 종교ㆍ정치 지도자들이 입 맞추는 모습을 연출, 격한 반응을 불렀다. 교황과 이슬람지도자, 오바마 대통령과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정겹게 입술을 맞댄 대형사진 포스터는 '증오하지 마세요(Unhate)'라는 캠페인 주제를 내걸었다. 뜻을 헤아리기에 앞서 '망측한 동성애'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교황청과 백악관이 당장 걷어치우도록 압박한 것이 무리가 아니다.

■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가상 입맞춤에 우리 사회는 그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탈리아 등 라틴과 슬라브 쪽에서는 국가 지도자들도 우의를 표시하는 '형제 키스(fraternal kiss)'가 관행이지만 우리는 낯설다. 그런데도 유난히 무심한 반응이 너른 마음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래저래 누구보다 생뚱맞게 여긴 탓이 아닐까 싶다. 마치 이런 사정을 헤아린 듯, 알레산드로 베네통 회장은 "사랑과 포용은 유토피아적이어서, 증오를 멈추자는 실용적 접근을 택했다"고 밝혔다. 캠페인 대상은 유혈 분쟁과 사회적 갈등을 포괄한다. 상업적 광고 캠페인도 새겨들을 만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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