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그의 후계자인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39ㆍ아랍어로 ‘이슬람의 칼’이라는 뜻)이 생포됐다. 카다피 정권의 재건을 꿈꾸며 마지막 남은 잔당을 이끌던 그가 붙잡힘에 따라 42년간 리비아를 호령해 온 카다피가(家)는 완벽한 몰락을 맞이하게 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카다피 사망 이후 종적을 감췄던 사이프 알 이슬람은 19일 오전 1시30분 리비아 남부 사하라 사막의 와디 알 아잘 지구에서 시민군에 생포됐다. 과도정부의 압델 라힘 알 키브 임시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체포 사실을 공식 확인했고, 현지 TV는 손가락에 부상을 입은 그가 구금시설 침대에 기대고 있는 장면을 방송했다.
지난달 20일 카다피 사망 이후 종적이 묘연하던 사이프 알 이슬람이 생포된 것은 경호원의 배신이 결정적 계기였다. 생포 작전을 지휘한 진탄 혁명군 사령관은 “사이프 알 이슬람이 니제르로 망명하려 한다는 첩보를 경호원으로부터 들었다”며 “그가 지나는 길에 덫을 놓고 기다려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이프 알 이슬람은 생포 직후 “내 머리에 총을 쏘아 (시신을) 진탄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카다피 정권에서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했던 사이프 알 이슬람은 2월 시작된 리비아 반정부 시위에서 유혈진압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반인륜 범죄 혐의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수배를 받아 왔다. 8월 수도 트리폴리 공방전에서는 아버지 대신 공개석상에 나가 국민의 저항을 독려했고, 수도 함락 이후에는 최후 거점 시르테에서 항전을 지휘했다.
남은 문제는 신병처리. 미국과 유럽은 그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ICC는 리비아 사건을 수사 중인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수석검사를 트리폴리에 급파, 과도정부에 사이프 알 이슬람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기로 했다. 또 지난달 카다피가 체포된 직후 명백하게 살아 있었음에도 이송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사살된 점을 감안에 서방과 ICC는 과도정부 측에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과도정부가 서방의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BBC 방송중동특파원 존 레인은 ▦국민적 공분을 산 전 정권 핵심인사를 나라 밖에서 재판받도록 하는 것이 여론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 ▦리비아가 ICC 회원국이 아닌 점 ▦과도정부 안에 여전히 사이프 알 이슬람의 처지를 동정하는 카다피 정권 인사가 활동 중이라는 점을 들어 헤이그 송환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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