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점심 먹은 회사원 특유의 나른함과 몽롱함을 온몸에 퍼뜨려 가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석간을 훑기 시작하려는데 '딩동' '딩동' '딩동'. 내 컴퓨터에 트위터들이 차례차례 답지했다. '속보: 강호동 숨 쉰 채 발견.' 억 그가 죽었나. 요새 탈세로 방송에도 못 나오고 하는데 혹시 자살이라도. 이 화끈 따끈한 문자가 선사한 두근거림 덕분에 방금 전 나른함은 완전히 가셔 버렸다. 이이고, 그런데 이게 웬걸. 자세히 보니 '숨진 채'가 아니라 '숨 쉰 채'. 완전 낚시였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대개 필자 같은 허황한 오독을 하기 마련. 충격에서 허탈로 바뀌었던 감정은 이내 '뭐 이런 짓까지 하냐'는 분노로 내달렸다.
도대체 뭔 조환가 싶어 인터넷으로 뉴스를 뒤져 보니 누가 이날 트위터에 '숨쉰 채 발견'을 올리자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퍼 나른 것이었다. 일부는 이를 잘못 이해해 '숨진 채 발견' '강호동 사망'으로 퍼 날랐다. 이게 다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으로 전파되면서 강호동 사망설로 확산된 것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숨 쉰 채 발견'에 따른 사망설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13일과 14일에는 각각 가수 이효리, 영화배우 조인성 등이 희생양이었고, 15일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망설도 무한 확산됐다. 또 9일엔 증권가에서 발원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망설이 SNS와 인터넷을 통해 전파돼 경찰이 사실 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런 글을 쓰고 퍼뜨리는 이유는 뭘까. 바로 클릭 수가 폭발하는 것에 대한 쾌감이다. '내가 올린 글이, 내가 퍼 나른 글이 이렇게 퍼졌어'. 지극히 유희적인 쾌락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추구한 결과는 엄청나다. 사망설이 뜬다고 피해자가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완전히 죽어 버린다. '사람들의 재미 거리가 될 만큼 내 생명은 무가치한 것인가' '사람들이 내 죽음 바랄 정도로 나를 싫어하나' 등 매우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되고, 나아가 심리적 공황 상태에까지 빠지게 된다.
사실 SNS만큼 유용한 소통 도구는 일찍이 없었다. 한 사람의 메시지가 수천 명에게 전파되고, 또 수천 명의 생각을 한 사람이 파악할 수 있다. 정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혁신적 무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지나친 자유방임성 때문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놓아두어선 곤란한 상황인 것이다.
우선 필요한 것이 SNS에 띄우거나 날라서는 안 되는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국가 안보 위기 초래, 개인과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 회사나 조직의 이익 침해 등 문제 행위 가운데 심각한 것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물론 개인 차원의 글을 모두 관리할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점이 있지만 특정 행위가 불법이란 사실을 명확히 한다면 사람들이 되도록 피하려 할 것이고, 나아가 문제가 됐을 때 처벌하기도 좋다. 아울러 이 법을 어겨 처벌받은 사람은 리스트를 만들어 SNS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면 그런 자유까지 용납할 수 없다는 것도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SNS도 매한가지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