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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살인 혐의로 온두라스서 1년여 수감 악몽 한지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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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살인 혐의로 온두라스서 1년여 수감 악몽 한지수씨

입력
2011.11.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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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성장통으로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여성 사망사건의 살인 혐의 누명을 쓰고 온두라스 감옥에 갇혔다 풀려나 지난 1월 5일 귀국한 한지수(29)씨는 담담했다. 어린 나이에 생지옥을 경험한 그이지만 "어두운 데서 빛을 본 것처럼 세상이 생각보다는 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확인했다"고 오히려 밝은 면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낙천적인 성격이었으니 고통스런 시간도 견뎌낼 수 있었으리라.

16일 서울 신촌에서 기자와 만난 한씨는 당시 사건에 대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했다.

한씨 인생의 전환점은 2009년 8월 30일이었다. 스킨스쿠버 강사 일을 하며 이집트에 머무르던 한씨는 어머니를 만나러 미국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카이로공항에 갔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체포됐다. 영문도 몰랐다. 3주 뒤인 9월23일 온두라스의 외딴섬 로아탄의 경찰서 유치장으로 압송됐고, 다시 온두라스 3대 도시인 라세이바 교도소로 이감됐다.

이 모든 게 2008년 8월 22일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계열의 영화관 운영 회사에 근무하던 한씨는 스킨스쿠버 강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회사를 그만둔 뒤 그 해 5월 온두라스 로아탄섬에 갔다.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던 30대 초반 호주인 남성 다니엘 로스가 그 해 8월 21일 마리스카 마스트(당시 25세)라는 네덜란드 여성을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마리스카가 다음날 오전 6시 갑자기 가슴 쪽에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숨졌기 때문이다. 살인 사건으로 판단한 온두라스 경찰은 다니엘을 체포했지만 혐의를 밝히지 못했다. 사건 당시 다니엘을 도와 응급처치를 했던 한씨는 같은 해 10월 가족을 만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두 달 뒤 이집트로 건너간 한씨는 마리스카 사건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하지만 온두라스 검찰은 같은 해 11월 마리스카 살인 사건 공범으로 한씨를 지목하고 인터폴을 통해 수배한 상태였다. 한씨는 "온두라스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1심에서 온두라스 검찰은 그에게 30년형을 구형했다. 그의 절망은 깊어졌다. 하지만 한씨 아버지가 현지로 달려와 구명 운동을 벌였고 현지 교민과 국내 여론이 움직였다. 한씨는 그 덕분에 2009년 12월 일단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한씨는 이후 보증금 1만달러를 낸 후 온두라스 제2의 도시인 산 페드로 술라의 교회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재판에 출석해 왔다. 한씨는 "가석방 됐을 때가 가장 기뻤다. 왜냐하면 재판에선 내 무죄를 입증할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2010년 10월 한씨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온두라스 검찰은 마리스카가 목이 졸려 질식사했다는 2차 부검보고서를 한씨의 유죄 증거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후 한씨는 인터폴 수배 해제 등 법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들을 해결한 뒤 귀국했다.

한씨는 한국에 들어온 후 외국으로 나간 적이 없다. 온두라스에서 마리스카 사건 최종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운신이 조심스럽다. 한씨는 "때가 되면 스킨 스쿠버 천국인 로아탄섬을 비롯해 외국에 나가서 자유로운 인생을 즐기고 싶다"며 "당시 나를 도와줬던 온두라스 교민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온두라스에 가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씨는 재판 과정에서 현지 변호사를 고용하기 위해 1억원의 빚을 졌다.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닌 한씨는 빚을 갚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서도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한씨는 "두 달 정도 몸을 추스른 뒤 곧바로 신촌의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 일을 하고 있다"며 "가르치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한씨는 귀국하자마자 알고 지내는 체육관 관장의 권유에 따라 역도를 배웠다. 또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서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 기타도 사고 노래 수업도 받고 있다.

한씨는 인터뷰 말미에 조심스럽게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시스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씨는 "이집트 경찰에서 온두라스 이감을 위해 조사를 받을 때 한국 영사 입회를 요청했지만 이집트 당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집트 경찰이 아랍어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해 피의자 신문조서로 생각하고 했는데 그게 이감 동의서였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씨는 또 외교부와 경찰 주재관 등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내 경우는 국민들이 관심과 도움을 줘 아주 잘 풀린 사례지만 한국의 재외국민 보호 시스템은 국민들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내 케이스가 재외국민 보호시스템을 개선하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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