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 제5의 메이저골프대회로 불리는 미국 프로골프투어(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탱크' 최경주는 우승이 확정된 직후 울먹였다. 3년4개월여 만에 거둔 PGA 8번째 승리. 모두가 "최경주 시대는 지났다"라고 말할 때 거둔 승리였기에 그의 눈물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최경주 눈물을 보며 또 다른 눈물을 삼켜야 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한은행이다. 신한은 2008년 3월 최경주와 3년 서브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당시 '상상 이상의 국내 최고대우'를 약속해 2002년 박세리가 CJ와 '5년간 순수 연봉 100억원'에 계약했던 조건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당시 최경주의 세계랭킹은 5위였기에, 신한의 선택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최경주는 신한과의 계약기간 내에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고, 세계랭킹은 48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계약이 끝난 지 불과 2달 만에 우승컵을 거머쥔 것이다.
KB금융지주는 2009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양용은과 올 4월 후원계약을 맺었다. 이후 양용은은 2달 만에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3위를 차지했다. 선두그룹에 속해 경기 내내 카메라가 그를 따라다녔고, 그가 쓴 모자와 옷에 새겨진 'KB'마크는 전세계 수억명의 시청자와 현지 갤러리들에게 각인됐다. KB금융 관계자는 "그 때 노출된 광고 효과만으로도 본전을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물론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 등 거의 모든 금융회사가 연예ㆍ광고 시장과 스포츠 시장의 든든한 후원자로 떠올랐다. 이미지 제고는 물론 브랜드 노출을 극대화해 매출까지 증대시키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인데, 결과는 KB금융과 신한의 경우처럼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상치 못하게 후원하는 선수가 슬럼프에 빠지거나, 연예인이 스캔들에 휘말릴 경우 이미지가 동반 추락할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모 아니면 도'의 세계가 바로 스타 스폰서십 비즈니스다.
올해 스폰서십으로 가장 성공한 곳을 뽑으라면 단연 롯데카드다. 롯데카드는 2011 프로야구 타이틀 공식 후원사다. 30년 프로야구 역사상 금융권이 공식 후원한 것은 롯데카드가 처음인데, 올해 사상 최초로 600만 관중이 넘을 정도로 대박이 났다. 자연스럽게 롯데카드의 브랜드 가치도 상승, 연간 20% 내외의 신장세를 보여온 신용판매 실적은 프로야구 개막 이후 매달 30%씩 증가했다.
후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곳으로는 KB금융과 하나금융을 들 수 있다. 2006년 말 당시 고등학생인 김연아를 후원해 온 KB금융은 세계선수권 연속 우승으로 KB 브랜드가치를 끌어올리더니 뱅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면서 후원효과를 극대화했다. 2007년 KB금융 광고모델로 채택된 박태환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화답했다. 특히 그가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 대회에서 전종목 예선탈락 할 때는 이미 광고모델 계약이 끝난 상태여서 KB금융의 '보는 눈'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재는 제2의 김연아로 불리는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를 중심으로 꿈나무 육성을 통해 또 다른 대박 신화를 기대하고 있다. 인기순위 1, 2위를 다투는 연예인 이승기를 3년째 모델로 기용하고 있는 점도 KB의 탁월한 안목으로 꼽히는 점이다.
하나금융은 10년 넘게 국가대표 축구대표를 후원해 온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비록 4년 주기의 월드컵 때에야 빛을 발휘하지만 오랜 후원으로 '국가대표 A매치 경기=하나금융'이라는 등식을 축구팬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또 미국여자골프대회(LPGA) 후원도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 했다.
하지만 '대박'과 '쪽박'이 백지 한 장 차이고, 언제든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스폰서십이다. 최경주 후원으로 쓴맛을 본 신한은 또 다른 골퍼 김경태를 통해 어느 정도 실패를 만회했다는 평가다. 특히 그는 지난해 일본골프투어 대회 상금왕을 차지, 당시 최고 경영진 분쟁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경태는 현재 진행중인 프레지던츠 대회에서는 최경주, 양용은과 세계를 대표해 미국 대표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성장해 신한의 위안이 됐다. 또 신한은 광고시장에서도 지난해부터 '부드러운 카리스마' 박칼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평가다.
스포츠 선수나 대회에 대한 후원은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장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광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단발성인데다가 자칫 브랜드가 모델에 파묻힐 수 있기 때문. 가령 '이영애의 하루', '김연아의 하루'가 대표적이다. 한꺼번에 10여개가 넘는 광고에 출연하다 보니 '이영애, 김연아는 아는데 브랜드가 뭔지 모르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 하나금융 광고마케팅 관계자는 "광고의 목표가 회사를 빛내야 하는 것인데 모델 중심의 광고는 모델이 빛나는 경우가 많아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안정성, 신뢰성을 보여줘야 하는 금융회사로서는 모델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스포츠 선수는 꾸준한 성적을 내야 하고 연예인은 스캔들 우려가 없어야 한다"며 "회사를 대표할 광고 모델을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빅 모델을 쓰지 않고도 일관된 컨셉트의 광고 캠페인을 계속해 경쟁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로 선풍을 일으켰던 현대카드는 이후에도 꾸준히 독특한 이미지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꾸준히 높였다는 평가다.
하지만 빅 모델을 쓰든 쓰지 않든 금융사들은 '광고효과는 역시 지출한 돈에 비례한다'는 주장을 확고히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체 금융회사의 광고비 규모는 1조5,371억원에 달했다. 하루로 따지면 42억원을 광고에 투입했다는 얘긴데, 은행 보험 카드 증권 저축은행 순이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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